피검사 결과 당뇨 경계선에 있다는 의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복용하는 약이 늘어나면서 아침 운동을 시작한지 이십 여일이다.이른 아침에 기상하는 일은 무엇보다 어렵지만 이왕 정신을 차리기로 마음먹었으니 ‘세로야’란 이름의 오솔길 산책로를 왕복 다섯 번 다녀오면 한 시간 반 걷게 된다. 마침 언니와 짝을 이루어 둘이 걸으니 자매와의 다정한 담소는 덤이다.
운전대를 잡았다.도시를 벗어난 산천은 초록으로 뒤덮여 지금 나는 시원함으로 풍덩 들어가고 있다.티맵에 공주 공산성과 풀꽃문학관을 입력하고 출발하려니, 장거리 운전에 초행이라 겁이 잠깐 든다.그러하나 집에서 타온 커피와 자동차의 라디오 음악, 티맵이 든든히 힘을 합하였으니 즐거운 출발이다. 공주 가는 길 도로는 한산하고 푸르른 산과 들만 보인다.그 사이로 보
파릇한 새싹이 돋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도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다.5월은 실록의 계절이라 했듯이 이를 방불케 하듯 하루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지고 있다.연일 비로 계속 된 어린이날 연휴가 한편으로는 야속하기도 했지만 어쩌면 가정의 달을 맞아 가족과 함께 지내라는 의미로 생각 하니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흔히들 5월은 가정의 달이라 부른다.이는 아마
‘근로자의 날’로 시작된 오월 첫 주 황금휴일을 맞아 제천으로 1박 여행을 떠났다.허물없는 오랜 우정의 세 친구와 가볍게 떠나는 여행이었다.한 친구는 자영업으로 사업을 이끌어가고 다른 친구는 간호사가 천직인 서로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가며, 살아가는 날들의 이야기를 편안하게 공유하는 다정한 벗이다.부와 가난을 가리거나 나누지 않고 오직 어린 시절 순수함 그
골목길을 돌아 한층 깊은 땅 작은 공원에 서 있다. 오래전에 누군가 흰 목단을 심었나보다. 꽃나무 세 그루에서 크고 흰 꽃봉우리들이 뭉게 뭉게 향기까지 피어오른다.길을 가다 멈춰 서서 이 목단을 보고 있다. 오월에 피는 목단이 사월 중순에 막 피어 버렸다. 기온이 오름 차이로 꽃들은 더 바삐 피어야한다. 한참을 꽃 곁에 있는데 그 아래 풀 속에 고양이를 발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들에겐 본능이란 유전적 인자가 존재한다.물론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자 욕구에서 발현되는 본능적 행동일 것 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온 세상의 생명체 들이 이 보호본능 때문에 존속되어 오고 있지 않나 싶다.뜨거운 여름엔 잎과 줄기에 수분을 끌어올려 그늘을 만들어 온도를 조절하고 건조하지 않도록 자신을 보
일주일 한번은 아파트를 따라 구불구불 산책로를 걷는다.일정한 길이가 한마디처럼 끝나는 부분과 닿으면 하늘을 찌르는 메타세콰이어 나무기둥에 등치기를 하며 뭉친 근육을 푼다.언니와 둘이 걷는데 걷는 보폭과 보행속도가 잘 맞아 두런두런 이야기도 나누며 느긋하게 보내는 시간이다.얼마 전 아파트 담장과 오솔길 가장자리와 통복천 주변은 만개한 벚꽃으로 가슴이 터지기
소나무숲 아래로 펼쳐진 수선화 물결이다.저 노란빛의 눈들이 햇살과 바람에 흔들린다.서산 유기방가옥 고택 주변, 뜰과 산에 뿌려진 수선화 동산에서 꽃향기 맡으며 봄의 자유를 마음껏 누렸다. 오래전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러시아의 들녘에 무더기로 피는 수선화 영상이 ‘라라의 테마’ 음악과 함께 잊혀지지 않는다. 코로나에 묶였다가 살아나 사람들은 마스크를 잊었
때가 때 인지라 향기보다 색채가 짙은 풍광의 시간들이 아침을 열면 새소리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고 새록새록 돋아 오르는 봄나물들의 기지개소리에도 잠을 설치곤 한다.언제부터인지 알 수없는 바람의 속도로 다가오는 훈훈함이 귓전을 스치고 지나가면 왠지 노랗고 빨간 색깔을 연상하게 되고 파릇한 새싹이 하늘을 찌르듯 들고 일어서는 대지에서 광야의 진동을 감지하기도 한
엘그랑데는 이란 스페인어이다.‘마이 네임 이즈, 봄’이 왔다.봄이 오니 이렇게 좋은데, 궈궈 울던 산비둘기와 까치, 직박구리, 길고양이와 강아지인들 오죽 좋으랴.겨울 문턱을 지나는 일, 유별나고 지난(至難)한 한해였다.계절통이 관절통 같이 깊었다.시린 하늘을 올려다보니 어느새 버드나무 꼭대기 까치집이 분주하다.꽃눈에 물이 차오른
한결 화창해진 봄 들판을 차창을 열고 달려 보았다.아침저녁 일교차가 아직은 큰 편이어서 두툼한 차림으로 차를 몰아 자그마한 동산 모퉁이를 돌아 넓은 들을 지나쳐 가볍게 비탈진 밭들을 바라보며 봄 냄새를 맡았다.아직 이른 감이 있어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무작정 나가 보기로 한 들녘엔 언제부터인가 겨울동안 곰삭았던 거름들이 요소요소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2월말 태백산 문수봉, 장군봉, 천제단과 함백산 정상에서 찍은 남동생 모습을 보며 아찔했던 그날의 사고가 떠오른다.가지마다 소복 쌓인 눈길 사이 깊은 절망 밟으며 한 발자국 조심스레 걸음을 옮겨 올라선 정봉에서 얼마나 슬피 울고 웃었을지 느껴진다.운무 속 바라다본 세상 앞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며 겸손한 사나이로 돌아온 선하고 맑은 무욕의 눈동자 인생사
비가 오면 나는 비마중을 나간다.검정색 넓은 우산 쓰고 베이지색 장화를 신고 집을 나간다.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 땅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즐겁다.어느 물웅덩이를 보면 장화를 신은 채 들어가 첨벙첨벙 논다.이렇게 사방에 주룩주룩 내리는 많은 물이 좋은 것이다.비가 오면 아프다.어깨와 등이 불편하고 내리기 전부터 몸이 나른하니 처진다.지난 겨울은 길고 추웠
겨울동안 소복이 내렸던 눈이 아직도 덜 녹은 곳에는 응달의 한기가 느껴지지만 군데군데 구멍처럼 녹아내린 포근한 양지쪽에는 어느덧 봄의 기운이 들어 차 있다.그러나 절기 입춘이 지났어도 일교차가 큰 요즘 밤 기온은 아직도 영하 7, 8도의 맹위가 남아 있다.하지만 동장군이 세월을 이길 수는 없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양지쪽으로 물오른 개나리가 피어오를
깊게 숙면을 취한 기억이 없다.어린 날은 너무 가난해서 공부보다 집안일 도우는 게 우선이었고, 잦은 질병과 수술로 사는 일이 버거웠다.살아가면서 의도하지 않게 발생하는 일이 많았다. 뿅망치로 아무리 쳐도 튀어나오는 두더지잡기 게임기처럼 삶은 다양한 경로로부터 오는 피할 수 없는 경험의 연속이다. 고요한 새벽시간, 돌확에 두 마리 금붕어도 가만히 자고 있다.
나의 집 베란다에는 제라늄이 있어 좋았다.어느 해 이른 봄날 시장에서 작은 화분에 심겨진 것을 삼천원을 주고 사왔다.물을 주고 햇볕 드는 창가에 두었더니 하루 이틀 줄기와 키가 자라면서 매년 계절 없이 꽃을 피웠다.분홍 주황빛을 피우고 지면 또 피었다. 꽃을 다 피우고 잠시 쉬는 제라늄은 이파리도 무성하다. 싱싱하게 평온한 모양을 갖추어 바라보면서도 식물과
우리명절 설날이 다가 오고 있는데 때 아닌 폭설이 온 누리를 덮었다. 여느 때 쌓인 포근함보다 매우 찐득거리는 눈이라서 인지 마음도 다소는 울적해지는 느낌이 든다.옛날 같으면 신나는 눈싸움이나 눈사람 만들기로 히히덕거리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뛰어놀고 있을 법한 상황 이지만 진 눈 덕분에 방안에서 토닥거리며 놀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았을 것 같다.그런데 좀
성악을 하는 동생의 집들이 초대가 있었다. 탁 트인 통 유리창 눈 쌓인 논이 보이는 고덕 신도시 풍경을 보며 도심 속 절경과 맞선 설레고 멋진 기분이 드는 집이다. 그리고 위풍당당 가오(폼의 속된 말)에 놀란다.아무 것도 없던 맨땅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맨질맨질 길이 닦여도 신도시 위력은 무채색 가운을 걸친 이구아나처럼 낯이 설고 삭막하며 정이 가지 않는다.
오랜 벗에게서 / 류 흔 오랜 벗에게서 전화가 왔네조용하고 외진 곳에잘 있다 말하려다 하지 않았네뒤란 대숲 서걱대는 소리를 들으며끝내 주소를 일러주지 않음도 참 잘한 일이다 싶네문지방을 넘어온 그늘이 양말을 적셨으므로나는 그것을 벗어 구석에 놓고 나서 뒤로 벌렁 누웠네천장은 하늘만큼 높고 생활은 바닥같이 낮으니부러 시 쓰려 애쓰지 않는다네열어놓은 쪽창 밖으
오래전 직장 동료로부터 안부 전화가 왔다.갑자기 내린 폭설 때문에 불편한 점은 없는 지, 또한 몸은 건강한지, 두루 잘 지내고 있는지가 주요 문안의 골자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이 첫 번이 아니었다.더듬어 기억해보니 시시 때때로 문안 전화를 받은 것 같다.궁금한 내용이야 별 큰 의미가 있겠는가 싶지만 일상적인 안부에 덧붙여 항상 기억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