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검사 결과 당뇨 경계선에 있다는 의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복용하는 약이 늘어나면서 아침 운동을 시작한지 이십 여일이다.

이른 아침에 기상하는 일은 무엇보다 어렵지만 이왕 정신을 차리기로 마음먹었으니 ‘세로야’란 이름의 오솔길 산책로를 왕복 다섯 번 다녀오면 한 시간 반 걷게 된다. 

마침 언니와 짝을 이루어 둘이 걸으니 자매와의 다정한 담소는 덤이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조금이라도 더 자려는 악마와 갈등을 빚는 내 의지는 늘 패배였다. 

곤한 아침잠은 설탕처럼 달다. 아이들은 다 나가고 일찍 일어날 특별한 이유가 없으니 몸도 마음도 느긋하고 게을러진다.

의사의 경고에 깨기도 했지만 삶을 타이트하고 간헐적 긴장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있던 터라 실천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덕분에 매일 새소리를 듣는다. ‘구구가가’우는 맷비둘기 소리에 구성을 맞추고 짹짹 부지런한 작은 몸의 참새와 마주한다.

새끼를 키워 나는 법을 엄격하게 훈육하는 어미 까치의 애타는 마음도 보았고, 높은 나뭇가지를 오가는 오색딱따구리를 보는 행운도 얻었다. 

세교동은 통복천 산책로와 아파트 주변을 따라 나무숲이 잘 조성된 세로야 길이 있고 관리도 꾸준하게 하여 소소한 운동길이 되어준다.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만날 수 있는 숲길이라니, 걸으면서도 감사하고 행복해져 발걸음이 가볍다.

오월은 봄을 보내는 계절이다.

담장에 붉은 넝쿨장미가 환하고 산책로 길에는 하얀 찔레꽃과 여학생 교복 칼라를 닮았다는 산딸나무꽃과 아카시아꽃이 주연 배우다.

날마다 짙어지는 푸른 잎의 나무들과 꽃, 새를 만나는 아침 맛을 이제야 알았을까, 하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했으니 마음이 날아갈 것 같다.

새로운 습관과 익숙해지니 오히려 피곤이 달아나고 시간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일거양득이 되었다.

미운 살들이 빠른 걸음 속에 녹아내리는 느낌을 선잠을 이긴 보상이라 우겨본다.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살기만 하면 억울해진다.

아침의 산뜻한 공기와 만나는 내면으로 모든 생명의 소리와 이입하면서 삶은 노래하듯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걷는 일이 기다려진다.

이완된 의식이, 굳었던 습관이 경쾌한 시간으로 나를 이끌어가는 아름다운 소리를 들으니 햇살만큼 웃으며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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