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동안 소복이 내렸던 눈이 아직도 덜 녹은 곳에는 응달의 한기가 느껴지지만 군데군데 구멍처럼 녹아내린 포근한 양지쪽에는 어느덧 봄의 기운이 들어 차 있다.

그러나 절기 입춘이 지났어도 일교차가 큰 요즘 밤 기온은 아직도 영하 7, 8도의 맹위가 남아 있다.

하지만 동장군이 세월을 이길 수는 없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양지쪽으로 물오른 개나리가 피어오를 것을 안다.

그래도 눈이 쌓여 보기 좋았던 겨울의 참 모습이 유난히 눈에 아른 거린다.

특히나 그림처럼 전개되었던 한적한 시골 초가지붕에 내려앉은 함박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요즘은 초가지붕이 거의 사라져 그 모습을 보기가 어려워졌지만 유년 시절 집집마다 초가지붕이 있었던 고향마을에는 눈이 내리고 나면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하얀 지붕으로 변해 갔다.

양지쪽 지붕 눈이 녹으면서 종일토록 흘러내리던 낙숫물 소리와 장단을 맞추듯 긴 한숨으로 되새김질을 하던 외양간 어미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기억한다.

녹아내리다 멈춘 채로 밤새 얼어붙은 고드름이 신기해 온종일 추녀 끝을 바라보며 고드름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의 고구마 삶는 냄새로 하루해가 저물도록 철없이 즐거웠던 초가지붕 아래에서의 행복을 잊을 수가 없다.

깊은 밤 천정 위를 덜덜거리며 횡단하던 쥐들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 다음은 초가지붕 추녀 속 깊숙이에 숨어 겨울을 나고 있는 참새들의 소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손전등을 들고 동그랗게 구멍이 난 곳에 살며시 손을 넣어 잠든 참새를 잡아 구워주시던 아버지의 모습은 연출로는 재연할 수 없는 한편의 다큐멘터리였다.

정월 대보름 명절을 맞아 앞마당에서 힘껏 돌려 치던 팽이 소리와 바깥마당에서 울려 퍼지던 어른들의 맷방석 윷놀이 소리는 초가지붕을 넘어 온 동네를 축제 판으로 만들곤 했다.

쥐불놀이로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불 깡통을 돌려대다가 커다랗게 떠오르는 보름달을 바라보며 알지도 못하는 소원을 빌었던 추억들은 이후에도 세상이라는 넓은 마당에 나와서야 그 진가를 발휘 했지만 우리 마음속에 깊숙이 자라잡고 있다.

이 모두가 초가집이라는 큰 울안에서 살아 온 아늑했던 정서가 가슴속에 영원히 녹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추수를 마치고 긴 겨울을 나기위해 이엉을 새로 엮어 올리고 나면 잠시 일을 멈추고 농한기로 접어드는 휴식의 시간이 된다.

어쩌면 우리 마음의 바탕은 초가집 이라는 아늑함이 안겨준 삶의 여정에 법칙 같은 정서가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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