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벗에게서 / 류 흔

 
오랜 벗에게서 전화가 왔네
조용하고 외진 곳에
잘 있다 말하려다 하지 않았네
뒤란 대숲 서걱대는 소리를 들으며
끝내 주소를 일러주지 않음도 참 잘한 일이다 싶네
문지방을 넘어온 그늘이 양말을 적셨으므로
나는 그것을 벗어 구석에 놓고 나서 뒤로 벌렁 누웠네
천장은 하늘만큼 높고 생활은 바닥같이 낮으니
부러 시 쓰려 애쓰지 않는다네
열어놓은 쪽창 밖으로 
하늘에 우거지는 구름을 바라보고 있을 때
쓰르라미 울음인지
오전에 든 벗의 목소리를 내려놓고 나서
볼륨을 낮춰놓은 전화벨 소리인지
낮은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네
 
 - 류흔 -
 
시집 <지금은 애인들을 발표할 때>, 달아실, 2021
눈 내리는 겨울밤은 차고 또 차다. 겨울 숲에는 눈꽃들이 피었다.
해가 바뀌도록 지저귀던 말들이 조용하다.
캄캄해서 할 말이 점점 잃어가는 밤이다.
아들이 택배로 보낸 귤 상자에서 귤을 꺼내 연신 귤껍질을 까며 겨울을 먹고 또 먹는다. 
그러다 시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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