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는 평택시민 여러분다사다난했던 2023년 계묘년(癸卯年)이 지나고 2024년 갑진년(甲辰年) 희망찬 새해가 밝았습니다.올해는 청룡(靑龍)의 해입니다.어려운 상황에도 굴하지 않는 상상 속의 ‘푸른 용’처럼 모두의 목표와 꿈을 이루기 위해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합니다.새해에도 저를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살기 좋은 평택을 만들기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우리 시가 한 걸음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정진하겠습니다.시민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갑진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가정에 늘 건강과 행복이 함께
존경하는 안성시민 여러분!갑진년(甲辰年)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 많은 시민 여러분들께서 안성시 발전을 위해 정치권에서부터 변화하여야 한다는 한결같은 목소리를 내주셨습니다. 안성시의회는 시민 여러분들의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하여 변화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안성시의회는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이후 독립된 지방의회 인사권 운영의 안정화와, 새롭게 정립된 집행기관과 의결기관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그저 쉽고 즐겁기만 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4년 갑진년은 푸른 용의 해입니다. 용은 전통적으로 재앙을 물리치는 힘과 용기, 행운과 흥행의 상징으로 여겨집니다. 새해에는 모두가 푸른 용의 기운을 받아 도전에 용감하게 맞서고 그 어떤 어려움도 당당히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노력과 열정이 푸른 하늘처럼 넓고 높게 펼쳐져 미래를 밝게 비추기를 기대합니다.새해에는 모든 이들에게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고, 경제적인 어려움과 불평등이 줄어들기를 바랍니다. 서로에게 지지의 손길을 보내고 지혜를 모아 어려움을 극복하며 목표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지
존경하는 평택시민 여러분, 그리고 국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평택시갑 국회의원 홍기원입니다. 갑진년, ‘청룡(靑龍)의 해’가 밝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청룡은 동쪽을 수호하는 신성한 용으로, ‘창조’, ‘생명’. ‘신생’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아직 사회·경제적으로 많은 위기와 어려움이 있지만, 여러분 모두 새해에는 청룡의 기운으로 치유와 회복을 하고, 새로운 변화와 기회를 창조해 내시길 기원합니다. 제21대 국회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습니다. 당선 이후 지난 3년 7개월간의 의정활동을 되돌아보면 제게 보내주신 평택시민의
사랑하는 안성 시민 여러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복 많이 받으시고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빕니다. 올해도 힘든 한해가 예상되지만,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이겨내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지난 해는 우리 안성이 변화를 실감하고, 기대로 가득했던 한 해였습니다. 특히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가 반도체 소부장 특화단지를 유치함으로써 안성이 첨단산업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의 거점에 안성이 당당히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시민의 생활도 확 바뀌었습니다. 저렴한 요금으로 편하게 서울로 가는 4401
존경하는 평택시민 여러분! 국회의원 유의동 인사드립니다.2023년 계묘년 한 해가 저물고 2024년 갑진년 새해가 밝았습니다.작년 한 해, 여러분께서 보내주신 성원과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새해에는 시민 여러분의 가정과 하시는 모든 일에 더 큰 축복과 행운이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돌이켜보면 지난 한 해 우리는 너무도 힘든 터널을 빠져나왔습니다.끝날 듯 종식되지 않은 마지막 코로나의 여파 속에서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의 3중 고로 인해 기업도 민생도 가쁜 숨을 몰아쉴 수밖에 없었던 한 해였습니다. 올해가 더 어렵다는 전문가들의
■ 청년정책▲가족돌봄서비스바우처(월 70만 원) 기존 6개월에서 12개월로 기간 2배 증가 ▲신체·정신건강 개선 자기돌봄비, 분기당 50만 원(연 최대 200만 원 지원)으로 상향 ▲고립은둔 청년 방문상담, 공동생활 경험·가족관계회복 등의 지원이 청년 320명·가족 640명으로 확대 ▲자립수당(18세 이후 보호종료 청년) 기존 월 40만 원→50만 원으로 10만 원 상향 ▲빈일자리 취업 장려금(조선, 물류 등) 최대 200만 원(6개월간) 지원 ▲대중교통 요금 할인 ‘K-PASS’, 청년 30%(일반 20%, 저소득층 53%) 할인
지난 1993년 12월 12일.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유산이자 국보 제287호로 지정된 ‘백제금동대향로(이하 금동대향로)’가 발견됐다. 부여왕릉원의 서쪽 골짜기인 능산리 절터 인근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것인데, 발견 이후부터 연일 전국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는 등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 발견 30주년을 기념해 지난해 9월 23일부터 오는 2월 12일까지 박물관 내 기획전시관에서 실제 금동대향로를 무료로 전시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2024년 갑진년(甲辰
19세기에 영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은 아편 무역을 통해 중국과의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했다. 아편의 확산은 사회 질서와 도덕성의 문제로 여겨졌고, 정부의 통제력 약화를 초래했다. 이에 따라 아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대책이 논의되었다. 청나라는 아편 문제에 대한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하게 되었고, 이는 크게 이금론(弛禁論)과 엄금론(嚴禁論)으로 대별된다. 느슨한 통제를 의미하는 이금론을 주장한 대표적인 인물은 황실의 의전을 주관하는 관청인 태상시(太常寺)의 소경(少卿, 정4품에 해당) 쉬나이지(許乃濟)이다. 쉬나이지는 부패
청 정부의 아편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영국의 지방무역상인으로부터 중국으로 밀수되는 아편의 유입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였고, 사회와 경제적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광둥체제 시기에 외국 상인이 청나라와 무역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銀)으로 거래해야 했다. 아편이 유입되기 전에는 중국이 무역흑자를 기록했기 때문에 중국으로 유입되는 은의 양이 대폭 증가하였는데 이는 중국 사회에 경제호황을 가져왔다. 그러나, 아편의 밀수가 증가하면서 무역의 역조현상이 일어났고, 중국에 유입된 은은 급속도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중국에서 은의 유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중국과 무역을 시작한 1713년 이후부터 무역흑자를 가져간 것은 언제나 중국이었다. 동인도회사는 이러한 무역적자를 극복하기 위해 아편을 밀수하기 시작했다. 청나라는 당시에도 아편무역을 금지하였기 때문이다.청 정부는 1729년(옹정 7년)에 개인이 아편을 마시거나 피우는 것을 금지하였고, 이러한 흡음 장소의 개설도 금지시켰다. 1796년(가경 1년)에는 외국 아편의 유입을 전면 금지시켰으며, 심지어 아편 자체를 불법화하였다. 그러나, 밀수조직과 부패한 청나라 관리의 결탁으로 아편 유입량은 점점 더 증가하였다. 영국
영국의 동인도회사가 1713년 중국과 무역을 시작한 이후부터 무역흑자를 가져간 것은 언제나 중국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형성된 산업자본가와 자유무역상인은 동인도회사가 중국 시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해 불공정함을 호소했고, 자유로운 무역을 진행할 수 있도록 독점권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은 대중 무역적자 해결과 통상항구 확대를 위해 청나라에 사절단을 파견하였다.영국은 세 번에 걸쳐 청나라에 사절단을파견하였다. 첫 번째는 1793년(건륭 58년) 조지 매카트니(G. Macartney)를 대표로 하는 사절단이 청나라와
‘일구통상’ 즉 ‘광둥체제(Canton System)’는 주로 중국이 1757년부터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되기 전까지 85년 동안 외국 상인들이 광저우에서만 무역을 할 수 있도록 시행한 정책을 의미한다.역사적으로 광저우에서는 세 차례에 걸쳐 일구통상 정책이 실시되었다. 첫 번째는 명나라 시기인 1523년부터 1566년까지 43년 동안, 두 번째는 청나라 초기인 1655년부터 1684년까지 29년 동안, 세 번째는 1757년부터 1842년 난징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85년 동안 이루어졌다.광둥에서만 무역을 할 수 있었던 영국은 무역
한때 동아시아는 유럽 사람들에게 이상향의 세계였다. 동방의 어딘가에 황금의 나라인 엘도라도(Eldorado)라는 낙원이 있을 것이라고 동경하기도 했고, 또 그곳에는 후추와 계피 같은 향신료의 군락지가 있어 자유롭게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동경과 믿음이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서구 사람들을 대항해의 모험으로 인도하여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게 하는 ‘지리상의 발견(Geographical Discovery)’으로 이어졌다. 대항해의 성공으로 지중해 중심의 무역이 대서양으로 옮겨가게 되었고, 포르투갈,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 등
중국을 통치하는 황제의 권위는 중국 전역은 물론 주변 국가와의 관계도 포함하였다.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는 중국과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방면에서 어떠한 교류도 할 수 없었다.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는 국가는 오로지 중국의 방식에 따라야만 했다. 무역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는 국가만이 중국과의 무역이 허용되었는데 이를 ‘조공무역(朝貢貿易)’이라고 한다. 조공무역은 조공과 무역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조공은 조공국인 조선, 류큐(琉球), 베트남 등의 왕이 청나라 황제에게 공물을 바치면 황제는 그 댓가
1616년 여진족(女眞族)의 후손인 누르하치(1559~1626)가 만주(지금의 동북지역)에서 후금(後金)을 세웠고 1618년부터 명나라와 대립하기 시작하였다. 1626년 누르하치 사망으로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1592~1643)가 왕좌에 올랐고, 1636년에는 황제로 칭하면서 국호를 ‘대청(大淸)’으로 개명하였으며 선양(沈陽)을 수도로 삼았다.1643년 3대 황제인 순치제가 즉위하고 그 이듬해인 1644년에 명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으로 진군하여 명을 멸망시키고 중국 전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청나라의 베이징 진입 이후에도
명나라(1368~1644) 4대 황제인 영락제(재위 1403~1424)가 정화에게 7번의 원정(1405~1433)을 명한 데에는 경제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 몽골족의 원나라(1271~1368)를 멸망시킨 주원장(朱元璋, 재위 1368~1398)은 원나라와는 달리 국가 간 무역 중심이 아닌 농업 중심의 폐쇄적인 국가 운영을 지향하였다.농업 중심의 국가 운영은 원나라 때 구축했던 대륙 간 육로 무역을 쇠퇴시켜서 이 육로를 통해 유입되었던 서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물품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당시 명나라는 지폐가 아닌
중국이 서양으로 인한 침략을 받게된 가장 큰 이유는 명청 시기에 해양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모하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 유럽 국가들이 이미 15세기부터 국제 정치나 지역 간 관계에서 자신의 영토나 영향력을 확장하고 강대한 국가로 성장하려고 시도한 점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포르투갈은 15세기 후반부터 새로운 항로의 발견을 통해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탐험하고 통제하기 시작하였다. 스페인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초에 콜럼부스가 발견한 신대륙, 즉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하기 시작하였고 이어서 바로 아메리카 대륙을 식민지화하기 시작하였다.
중국은 중국 역사를 고대, 근대, 현대, 당대로 구분한다. 특이한 점은 우리에게 익숙한 고대와 근대 사이의 중세 시기가 없다는 점이다.1840년 이전까지의 역사는 모두 고대에 속하고, 근대는 1840년 아편전쟁부터 1919년 5·4운동까지이며, 현대는 1919년 5·4운동부터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이다.신중국이라고 불리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기를 현대와 구별하여 당대(當代)로 구분한다.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17세기 명청 교체기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중국인 학자나 서양인 학자 사이에서 대체로 일치
중국 최고의 역사서로 손꼽을 수 있는 사기(史記)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사랑받고 있다. 보통 책을 집필할 때 서론은 항상 처음에 있게 마련인데 사기는 서론과 저자 소개가 책의 제일 뒤에 있다. 아마 그 이유는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다른 인물들에 비해 자신을 먼저 드러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그는 책의 서문을 제일 끝부분에 ‘태사공 자서’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고 사기를 마무리하였다.그 자서에는 자신의 집안에 대해 설명했는데 대대로 역사를 기록하는 일을 하였으며 자신의 아버지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