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은 싸움과 다툼없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반면 불화는 서로 관계가 좋지 않아 갈등과 다툼이 있는 상태를 의미할 것이다. 국가 간의 불화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교류 단절로 이어진다. 서로 대립하고 상대방 나라가 잘못되기를 바란다. 심하면 군사적인 충돌로 이어진다. 나라와 나라 간에 화목하지 않다는 것을 잘 드러내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국경이다. 서로 감정이 나쁘고 대립하고 있는 나라끼리는 국경의 경비가 삼엄하다. 그러나 서로 화목한 나라는 국경을 넘나들기가 아주 수월하다. 마치 옆 동네 가는 것과 같다. 서로의
사람과 꽃의 인연이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음의 여유를 생각의 곳간에 채우고 남을 때엔 그 어디엔가 보존 하려는 욕구가 불러온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남아도는 여유로움을 꽃 이라고 하는 객관적 대상에게 맡겨 두고 마치 꽃을 사랑 하는 것처럼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애정과 관심을 쏟아 부으며 나만의 생각 곳간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꽃이 가진 아름다운 자태와 빛깔 그리고 향기 까지 더하면 그 이상의 반려는 필요치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그리하여 우리는 꽃을 가까이 하고 사랑하면서 마치 그
사람을 만나면 상냥한 말투와 표정으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자연스런 칭찬의 말이 오래도록 몸에 배어 진심으로 예쁘게 말하는 습관으로 나 또한 칭찬을 받는다. 처음에는 그냥 한 말인데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에 일어 신중해졌다. 터무니없는 말이 아닌 상대가 가진 외적인 작은 변화와 성향을 파악해 툭 던지면 무척 즐거워하는 것이다. 일에 지쳐 고단한 친구와 긴 시간 통화를 했다. 죽마고우 친구를 위로하는 일은 그녀의 넋두리를 끄덕이며 들어주는 일이다. 내가 할 말보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야기에 적합한 추임
물가에서의 비릿한 냄새가 아닌 소독약 냄새가 났지만, 도시 속에서 이런 풍요로운 시냇가를 만난 것이 기뻤다. 몸살을 앓고나서 집에서 나오기를 겨우겨우 한 발짝 떼어 배다리 도서관으로 걸었다. 가까이서 물소리가 나길래 둘러보니 시냇물 흐르는 소리다. 자연스레 징검다리가 놓여있고 물레방아도 돌아간다. 돌 틈에 한 포기 아이리스꽃이 피었고 노니는 물고기도 보았다. 세무서와 도서관 사이로 이어지는 작은 동산을 가로질러 긴 시냇가가 생겼다. 인공시냇물이지만 돌고도는 생활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기에 충분했다.가벼운 가방과 노트북을 들고 도서관
사람이 가진 욕심 중에는 소유 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아마도 생존을 위해 필요한 식량과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 이었으리라 생각 된다.그 종류는 매우 다양 했을 것이지만 우선적인 생명 유지가 가장 최선이 아니었을까 추정 된다. 그리하여 우리 유전자 속에 심겨져 있는 욕구를 아직도 버리기가 매우 어려운 것 같다.더러는 지나친 욕구가 불러오는 비 이상적인 현실에 빠져 있으면서도 스스로 각성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폐품을 주워 모아 집안가득 쌓아두고 발 디딜 틈조차 없이 살고 있다는 어느 노부의 이야기가 생각난
웃을 일이 많지 않아서 사람들의 얼굴이 굳은 사회다. 고객 응대가 업무인 나도 사실 하루 종일 웃으며 상냥하게 손님을 맞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오랜 세월 비슷한 업종에서 일을 하다 보니 교육의 힘도 있었지만 미소를 머금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자연스레 몸에 배어 무언가 도움을 청하는 손님에게 너무 친절해 어떤 때는 가식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그러할 때면 웃음에 관한 재미있는 명언이 떠오른다.“좀 웃으시오. 그리고 부하들에게도 웃음을 가르치시오. 웃을 줄 모른다면 최소한 빙글거리기라도 하시오. 만일 빙글거리지도 못한다면 그럴 수 있
그녀는 지치고 배가 고팠다. 도시생활 속 돈벌이와 꿈에 지친 청춘이 한 겨울 고향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맨 먼저 한 일은, 눈 덮인 밭에서 대파와 배추를 맨손으로 뽑아 자신을 위해 배추 된장국을 끓여 먹이는 일이었다. 손수 장작을 구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고 씻어 도마와 칼과 그릇과 솥을 다루며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느리게 느리게 마음이 여물고 불안이 녹는다. 영화 를 다시 보며 글로 엮는다. 최고의 요리는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다. 사계절을 담아 자연의 알갱
“자극과 반응사이에는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힘이 있다. 그 반응에 우리의 성장과 행복이 달려 있다”는 오스트리아 철학자 빅터 프랭클의 글을 읽다가 시시로 오는 자극과 변화와 마음현상에 분란함을 정돈해본다. 그는 또 “당신이 가진 최고의, 그리고 최후의 자유는 바로 선택의 자유이다”라고 했다. 겨울로 가득 찬 마음이란 공간도 자연이 변화하면서 봄이란 이름으로 채워지고 있으니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하나의 계절이 지나간다는 것은 사라지는 의미가 아니라 뒤로 물러나 다음 순서를
새벽에 유리문을 두드리는 빗소리를 들었다. 뜨지 않은 눈으로 비 두드리는 소리를 가만히 가만히 듣기만 했다. 비오는 날이 마침 휴일이라 마음껏 여유를 부린다. 물을 끓여 커피를 정성껏 타서 들고 집을 나왔다. 짧은 장화에 커다란 우산을 쓰고 봄비 마중을! 봄기운과 나는 하나가 되어 마음껏 호흡한다. 때에 맞게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대지는 우유처럼 빨아 들이고, 덕동산 잔디 공원 튤립 구근 싹이 덤불을 뚫고 무수히 삐져 나온다. 재랭이 고개 나의 영춘화가 보드라운 비를 맞으며 노랗게 피기 시작했다. 11월, 12월, 1월, 2월 동안
겨울동안 소복이 내렸던 눈이 아직도 덜 녹은 곳에는 응달의 한기가 느껴지지만 군데군데 구멍처럼 녹아내린 포근한 양지쪽에는 어느덧 봄의 기운이 들어 차 있다.그러나 절기 입춘이 지났어도 일교차가 큰 요즘 밤 기온은 아직도 영하 7, 8도의 맹위가 남아 있다.하지만 동장군이 세월을 이길 수는 없듯이 얼마 지나지 않아 어김없이 양지쪽으로 물오른 개나리가 피어오를 것을 안다.그래도 눈이 쌓여 보기 좋았던 겨울의 참 모습이 유난히 눈에 아른 거린다.특히나 그림처럼 전개되었던 한적한 시골 초가지붕에 내려앉은 함박눈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요즘
둥글게 돌아간다는 의미는 걸림이 없이 수월하게 소통 된다는 의미에 부합 될 것 이다. 장애물이 없어야 쉽게 회전이 가능 할 것이고, 모난 부분이 없어야 또한 그러할 것이다. 공중을 날듯이 돌아가는 회전 그네를 보면서 세상의 모든 것 들도 저렇게 수월하게 빙글빙글 돌아갔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거리낌 없이 내 달리는 급행열차나 계곡을 내리 달리는 스키보다도 더 의미 깁게 다가오는 회전의 미학이 왜인지 명확하게 구분이 되지는 않지만 혼잡한 차들을 신호 없이 자율적으로 운행 하도록 설계된 회전 교차로를 보면서 더욱 그 의미가 강
신정호수에 도착하니 날씨가 흐려졌다. 선약된 친구들과의 나들이라 찬바람에도 좋았다. 물속에 잠긴 나무들과 살얼음이 소리 없이 밀리는 가운데 저 멀리 오리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겨울나기를 위해 속 털을 촘촘히 찌운 듬직한 몸을 물 밖에 나와 말리는 모습도 보인다. 호수의 나무 데크 길을 도는데 한 시간 가량 걸린다. 발을 옮기니 만보기가 작동한다. 좌로는 가지만 남은 수목마다 이름표가 세워져 있고 우로는 물에 잠긴 나무와 마른풀들로 가득하다. 여름을 싱싱하게 하던 꼬부라진 연잎과 연대가 푸른 시절의 무상을 말하듯 고요한 일기를 쓴다.
한동안 당근 시장에 나와 있는 물건을 구입하는 것에 푹 빠져 살았다. 틈만 나면 당근 앱을 열고 들어가 울긋불긋한 모양의 사진 속 물품들을 바쁘게 눈에 담느라 시간 개념조차 잊는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온갖 것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을 입고 세상에 나온 가지각색의 제품들을 보는 신기함, 부담스런 시선 없이 혼자 눈으로 마음껏 쇼핑하는 자유로움이 방종까지 이어질 지경이다. 내가 구입한 물건은 화홍 그림붓, 색연필 64색 셋트, 퀼트 가방, 뜨개 모자, 나무 의자, 장화, 나무 행거 등 주로 새 물건이나 수제품을 골라 저렴히 구입한
시간 속을 여행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함축 해 준다.무엇보다도 한해를 넘겨 달리는 해맞이 여행은 희망과 설렘이 포만 된 순간 일 것이다.지난 한해를 마무리 하면서 뒤돌아 볼 새 없이 바쁜 일상으로 질주 하는 사이에 한 해의 긴 여행이 마감 되었지만 새해 아침 둥근 해가 유난히도 밝고 크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새로운 한해의 여행길에 올라서서 바라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 한다.그동안 수많은 시간들과의 한판 승부에서 우리는 항상 우승자가 되었다.그 시간들이 쌓여 하루가 되고 한 주가 되며 한 달 두 달 여행 기록으로 남게 되
무엇이든지 끝이 난다는 것은 유쾌함 보다는 아쉬움이 앞서기 마련이다.새해 첫날의 감회가 사뭇 무식해 지기 시작하는 연말이다. 때 맞춰 찾아든 한파가 더욱 쓸쓸함을 더해가는 시점에서서 한해의 긴 밤 동지를 맞이하는 감회 또한 스산하다. 계절의 혹한기 이지만 마음의 혹한기는 아니길 비는 애절한 심정이기도 하다.사계절을 살면서 매번 맞이하는 계절적 특지의 상징적인 날들이 있다.봄은 화창 하다 하고, 여름은 혹서기 때문인지 지루하다고 흔히 들 말한다.그런가하면 가을은 풍요로운 계절 이라 한다.보고 먹을 것이 넘쳐나서 그렇게 불리지 않나 생
나의 집 베란다에는 제라늄이 있어 좋았다. 어느 해 이른 봄날 시장에서 작은 화분에 심겨진 것을 삼천원을 주고 사왔다. 물을 주고 햇볕 드는 창가에 두었더니 하루 이틀 줄기와 키가 자라면서 매년 계절 없이 꽃을 피웠다. 분홍 주황빛을 피우고 지면 또 피었다. 꽃을 다 피우고 잠시 쉬는 제라늄은 이파리도 무성하다. 싱싱하게 평온한 모양을 갖추어 바라보면서도 식물과의 일치감에 행복해, 그 이파리에 손가락을 살짝 문지르면 허브향이 진하게 손끝에 닿았다.초겨울부터 한기에 얼어 죽을까봐 제라늄을 들어 안으로 들였다가 다시 베란다에 놓아 비닐
한해의 마지막 달 첫날 아침에 달력을 마주하고 앉아 있자니 만감이 교차됨을 통감한다.새해 첫 달력을 넘기며 느꼈던 소회와는 사뭇 다른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겨울의 냉기를 품고 시작 된 1월에서부터 서서히 온화함이 찾아들고 새싹이 돋아 오르기 까지도 지난한 일기기의 심술로 말미암아 꽃 몽우리가 얼어붙는 수난을 겪으며 봄을 맏이 한지가 엇 그제 일처럼 아련하다.개화기에 냉해를 입은 식물들이 여름 내내 몸살을 앓기도 했다.그래서 그랬는지 울안 감나무가 늦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름 대더니 예년 같으면 약 두접
얼마 전 몸에 이상이 있어 병원을 찾았다. 내과에서 복부 ct 조영촬영과 각종 검사와 함께 엄지손가락 사이 혹이 커지고 있어 두 가지 검사를 동시에 진행했다. 종일 검사와 기다림, 수납과 이동으로 지친 가운데 신경 종양으로 판명된 손가락 혹 수술이 결정되어 입원을 했다. 간단한 시술 정도로만 생각하여 아무 준비 없이 왔다가 수술대 위에 누워 수면 마취로 잠이 들었다. 백색 병실 침상에 옮겨져 있다가 눈을 뜨니 손에 붕대가 칭칭 두껍게 손목까지 감겨 있었다. 쇄골로 주입한 마취가 풀리지 않아 한쪽 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옆 침대
바닷물이 빠진 뻘 위로 늦가을 햇볕이 가득하다. 저만치서 밀물 떼가 아장아장 겹겹이 밀려들어온다. ‘어디 갔었니? 너희도 멀리멀리 달아났다가 반가운 때가 되어 돌아오는거니?’ 밀물떼가 돌아오는 모습은 명랑하다.우리 일행은 이른 아침 홍성 남당항 선착장 매표소에 앉아 죽도 가는 배를 기다렸다. 휴일을 맞아 섬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고 가는데 육지에만 들러붙어 사는 나에게 섬과 배는 신기한 풍경이다.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15분쯤 들어가 섬에 닿았다. 나무로 만든 둥근 길을 천천히 걸었다. 네 등분으로 나눈 사과를 베어 물며
본격적인 가을의 서막이 열리고 현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단풍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너무나 온화하고 적당한 일교차 때문인지 매우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다.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고 멋진 풍광을 보여 주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그러한 우리들의 속셈을 알 리가 없는 나무들은 아름답지만 어절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운명도 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순순히 놓아 주어야 마땅할 것이지만 그래도 내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서둘러 떨어진 낙엽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