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의 마지막 달 첫날 아침에 달력을 마주하고 앉아 있자니 만감이 교차됨을 통감한다.

새해 첫 달력을 넘기며 느꼈던 소회와는 사뭇 다른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채 가시지 않은 지난해 겨울의 냉기를 품고 시작 된 1월에서부터 서서히 온화함이 찾아들고 새싹이 돋아 오르기 까지도 지난한 일기기의 심술로 말미암아 꽃 몽우리가 얼어붙는 수난을 겪으며 봄을 맏이 한지가 엇 그제 일처럼 아련하다.

개화기에 냉해를 입은 식물들이 여름 내내 몸살을 앓기도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울안 감나무가 늦도록 열매를 맺지 못하고 시름 대더니 예년 같으면 약 두접 정도의 감을 우리에게 안겨 주었었는데 올해엔 겨우 7덩이만 달랑 내 주고는 멍하니 서있다.

담장 안으로 길게 양팔을 벌리고 서있던 포도나무도 지난여름 어느 날 톱으로 뿌리째 잘려 나가는 수난을 겪고 그림자만 남긴채 사라졌다.

늦게나마 피어오른 꽃 잔디가 화단 둘레를 장식해 주었고, 지난해 사라진 구찌뽕 나무의 질긴 뿌리들이 온통 밭을 장악하고 기세를 부리기도 했다.

누구의 심술로 돌릴수도 없었다.

그냥 받아 들여야 하는 나약한 마음만 어루만진 봄 이었다.

나뭇잎들이 기다리던 태양과 빗방울의 비율이 꽤나 어긋난 여름 이기도 했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할 수 없었던 호박잎이 어깨를 늘어뜨린채 축 처져있는 모습은 바라볼 때엔 한껏 더위를 참지 못하던 한낮의 뙤약볕이 야속하기도 했다.

길고 지루했던 여름의 열기가 늦게 까지 지속 되면서 늦은 장마에 우박까지 동반하여 고추 배추 과일 등 농작물이 우박에 얻어맞아 울상이 되었을 때 우리 국민 모두도 흠씬 두들겨 맞은 심정 이었을 것 이다.

추석 차례 상에 마음이 상하지 않은 과일을 골라 올리기가 매우 난감 했던 기억도 있다.

군데군데 풍파를 얻어맞은 사과의 얼굴이 꽤나 많이 보였지만 농민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기꺼이 구매를 하기도 했고 정중하게 세상의 풍파가 있었음을 조상님께 고하기도 했다.

이제 본격적인 겨울로 접어들어 영하 9도의 매서운 날씨가 시작 되면서 올해 마지막 달력을 넘겨놓고 바라보고 있다.

한해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해 달라고 소망을 빌던 새해의 기운이 아직은 남아 있으리가 믿는다.

한 달 여 남은 한해를 잘 마무리 하면서 서둘러 소망을 빌어 보고 싶다.

모나지 않고 둥글게, 너무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게, 너무 빠르게 혹은 느리지도 않게,

가물이 들거나 장마가 길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주문해 본다.

안녕과 평화란 거칠지도 험하지 않은 일상의 연속이 아닐까 싶다.

마음이 과하지도 않고 노하지 않으며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지혜가 더해진다면 이 작은 소망들이 이루어 져 풍요롭고 행복한 나날들이 이어 지리라 믿는다.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한 말로써 위로하는 한해 인사를 시작으로 훈훈한 정이 넘치는 12월을 보내야겠다고 다짐 하면서가는 해와 더불어 오는 해의 소망도 함께 비는 포근한 겨울을 보내고 싶다.

토끼해가 가고 갑진년 용띠해가 떠오를 날을 기대하면서 작지만 큰 소망들을 송년에 빌어 본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마음먹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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