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지치고 배가 고팠다. 

  도시생활 속 돈벌이와 꿈에 지친 청춘이 한 겨울 고향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 맨 먼저 한 일은, 눈 덮인 밭에서 대파와 배추를 맨손으로 뽑아 자신을 위해 배추 된장국을 끓여 먹이는 일이었다. 

  손수 장작을 구해 난로에 불을 지피고, 부엌에서 재료를 다듬고 씻어 도마와 칼과 그릇과 솥을 다루며 요리를 하는 과정에서 느리게 느리게 마음이 여물고 불안이 녹는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다시 보며 글로 엮는다. 

  최고의 요리는 아무래도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친구들과 나누는 것이다. 사계절을 담아 자연의 알갱이들을 따서 김치 수제비, 배추전, 아카시아꽃 튀김, 막걸리를 만들어 몸에 에너지를 먹인다. 자신을 위해 자기를 먹이니 몸은 고단해도 생활은 담백하다.

  일찍 고향을 떠난 나는 단번에 심어지지 않았다. 유목 성향이 있고 튼튼하지 않아 아주심기가 곤란하다. 고향의 사과밭을 떠났지만 한 도시에서 이리저리, 정처 할 수 없는 세상살이였다. 

  나의 유목 생활은 시간의 자유를 고려해 일을 선택한 데 있다. 일과 여행에 두 눈을 맞추느라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식물의 가지와 방향은 하늘과 햇빛 쪽으로 자란다. 가지가 자라는 동안 뿌리도 땅속 깊이 뻗어 자리를 잡는다. 육체는 떠돌아도 정신의 아주심기는 가능하다.

  내가 아플 때 남의 아픔을 읽으면 치료가 된다. 내가 벼랑에서 불안할 때 내 주위에도 벼랑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떠돌아도 내 마음의 집은 안에서 계속 지어지고 있다.  

  달팽이는 제 집을 등에 지고 다닌다. 나는 안에 펜을 장착하고 계절과 바람이 하는 일을 적는다.  다시 되돌아갈 수 없는 문명이 가고 새로운 것이 오고 있다. 

  단단하지 않은, ‘싶어요’, ‘같아요’를 여의고 결단하는 서늘한 의식이 있다. 

  스스로 되어가는 아주심기는 뿌리로 돌아가는 일이고, 집으로 가는 여정에 있다.

  겨울 동안 굳은 논밭을 첫 번째로 갈아엎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온실에서는 모판에 씨앗을 심거나 모종을 들어 들판에 옮겨 심어야한다. 밖으로 떨어져 나온 모종을 햇빛과 비바람 아래 그대로 정해 아주 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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