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찬 작가
권혁찬 작가

본격적인 가을의 서막이 열리고 현란할 정도로 아름다운 단풍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너무나 온화하고 적당한 일교차 때문인지 매우 아름답게 단풍이 물들어 가고 있다. 오래도록 떨어지지 않고 멋진 풍광을 보여 주었으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한 우리들의 속셈을 알 리가 없는 나무들은 아름답지만 어절 수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운명도 알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기에 순순히 놓아 주어야 마땅할 것이지만 그래도 내내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어쩌다 서둘러 떨어진 낙엽들을 쓸다보면 땅 바닥에 찰싹 달라붙어서는 좀처럼 쓸려 나가지도 않고 바람에 불려 날아가지도 않는 것을 보면서 우리 인간의 간절함 보다 더 애절한 낙엽의 근성이 아닐까 생각 해 본다. 공원길엔 낙엽이 있어서 사각사각 밟으며 걸을 때 그 운치의 진가가 더해지고 있다. 낙엽이 떨어져 적당히 말랐을 때 밟아야 더욱 경쾌하고 명랑한 소리가 난다.

이마도 그때 쯤 이면 뿌리로부터 받았던 생명의 자양분이 완전히 고갈되어 건조되면서 드디어 나뭇잎으로써의 운명적 소임을 다 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리하여 바람결에 휘 날려 정처 없이 사라지는 운명이 되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생각 없이 밟고 쓸어대는 우리 인간들의 탐욕이 극치에 달했음에 낙엽들은 아삭아삭 부서지는 소리로 절규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그 절규를 운치로 잘못 알아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기도 하다.

떨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나뭇잎은 마른 잎보다 더 악착같이 땅에 달라붙어 쓸려 나가지 않는 것을 보면서 아직 낙엽으로써의 소임이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무자비하게 쓸어버리려는 우리들의 우매함을 질책하는 듯한 행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봄부터 계획 된 낙엽의 일대기를 너무나 이해 못하는 우리 인간들의 우매한 아집이 조금은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이제부터 낙엽을 쓸 때엔 그 옥석을 좀 가려서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얼마나 많은 초록의 유전자를 간직 했던 입새였는지 독백처럼 물어도 보고 우리의 얄팍한 지혜로 라도 일대기를 헤아려 볼 작정이다.

오늘의 그 현란한 색조의 채색은 얼마나 많은 인고의 세월과 가뭄의 대가를 치루고 형성 되었는지도 물어 볼 생각이다. 

왜 그리도 악착같이 매달려 밀려 나가지 않으려 애쓰는지도 길게 헤아려 보면서 낙엽의 근성도 사람의 그것과 유사한지도 물어야겠다. 어쩌면 우리의 근성도 그와 같아서 생존과 보존 성장과 결실을 위해 한껏 몸집을 부풀려 위세를 떨치다가는 저마다의 형형색색으로 치장 하여 인생의 세월을 보낸 후에는 낙엽처럼 내려앉아 고루하고 현란하리만큼 찬란했던 지난날들을 기억하며 삶의 색채를 고르게 될 것이다.

미물처럼 맹목적이 아닌 이유 있는 근성으로 항변 하면서 사람이기에 당당한 논리로 삶을 그렸노라고 두 주먹을 쥘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바람에 밀려 나가지 않는 낙엽의 근성이 바로 우리들의 원초적 근성과 너무나 흡사 하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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