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강력한 태풍이 연거푸 지나가고, 그와 함께 폭우마저 쏟아져 곳에 따라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특히 농수산물, 축산물, 과수농사의 피해는 우리의 식생활에 직접 관련이 있기에 우리 모두에게 큰 충격을 안겨다 주었다. 모든 것을 하루아침에 다 잃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하며 하늘이 원망스러울 정도의 그 심정은 살아갈 의욕조차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온 천지를 다 집어 삼킬듯 험악했던 태풍과 폭우의 모습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을 되찾고 청명한 가을 하늘로 우리 앞에 다가와 한가위의 기쁨을 안겨다 주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우리의 생 활 문화가 사라지는 것도 많고, 새로 생기는 것도 있고, 또 남아 있기는 해도 본래의 제 모습을 잃은 채 얼치기로 이어져 가는 것도 있다.
그 중에서도 추석은 아마 세 번째 경우 일 것 같다. 추석 하면 선조의 묘소 벌초와 성묘, 차례가 떠오른다. 이 모두가 앞서 가신 선조에 대한 감사 와 효심을 나타냄이다. 이 중심에는 진정어린 정성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형식과 편이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다. 벌초는 대행업체에 맡겨서 하고 차례 음식은 차례용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마트에서 사다가 쓴다. 마트에 가서 사오는것도 귀찮으면 차례상차림 전문 업체에 전화나 인터넷으로 주문하여 가져오게 한다. 이 때 형편 따라 값을 정하여 주문하기도 한다. 이러다 보니 가끔씩 사기 피해도 당하는 모양이다.
이번 추석에도 어떤 사람은 14만 원짜 리 차례 상을 주문했는데 추석날 아침에 가져오기로 한 시간이 되 어도 오지를 않아 전화를 했더니 받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확인해 보니 이미 돈만 받고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렇게 사기 당한 사람이 한 두 사람이 아니라 한다. 하는 수 없이 슈퍼에 가서 포하고 과일 몇 개 사다 놓고 초라하게 차례를 지내는 모습을 TV 뉴스를 통해 보았다.
이런 정도는 그래도 양호한 편이다. 한 가위 연휴를 맞이하여 가족이 외국여행을 가서 호텔 방에 앉아 대행업체가 차려 놓은 차례 상을 유튜브나 ITV로 내려 받아 보며 업체 직원이 지시하는 순서에 따라 절만 하면 된다.
성묘도 이런 방식으로 묘소를 보면서 절을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집에서 지방이나 축문을 직접 쓰거나 상차림을 평소 익혀둔 방 식대로 손수 해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인터넷에 들어가 찾아서 지방도 축문도 인쇄기로 뽑아 낼 수 있다. 또 제수를 제상에 진설하는 위치나 순서도 정확히 나타나서 그대로 차리면 되는 것이다.
지난날의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바뀌며 매사가 빠르고 편리해 지다 보니 골치 아프게 기억해 두고 제상 차리고 제를 올리는 순서도 그때그때 옳으니 그르니 논쟁을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신문명의 도구들은 사 람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할 뿐 아니라 전통적인 사고와 생활 문화를 바꿔 놓는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 게 어디 있겠는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뀜에 따라 단순사회에서 복잡다단한 사회로 변하고 가난을 벗어나 풍요롭고 편리한 생활을 누리면서 사람들의 의식도 바뀌며 새로운 문화 속에 젖어드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과 절차는 바뀌어도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을 이어 가고자 하는 정신적 가치는 지켜감이 옳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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