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여러 사람과 부딪치며 살아간다. 최근의 사회 흐름은 핵가족화의 영향으로 나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고 혼자 외톨이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사회학에서 사람을 사회적 동물이라고 지칭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복합적으로 어울리고 더불어 사는 것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세다. 그러나 우리 사회엔 좋고 나쁜 사람들이 공존해 있다. 때문에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렵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는 속담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올바르고 유익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평가 하고 판단하는 잣대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은 어떤 경우에도 완전할 수 없다. 사람에 따라 우, 열이 생기고 사람을 잘못 사귀게 되면 크나큰 손실이 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친구나 이웃을 잘못 사귀어 패가 망신하는 사례가 우리 사회엔 얼마든지 있다. 좋은 사람을 사귀는 것은 누구 에게나 바람직한 일이다. 어려울 때나 기쁠 때를 막론하고 동반자 입장에서 같이 할수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도 매우 소중한 일이다.

  인간에 대한 평가와 판단 기준은 같은 사람을 두고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우리 동양사람들은 내용보다는 외모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뼈를 깎고 성형을 하는 것은 이 같은 외모지상주의에 기인한다.

  옛날 관리를 등용할 때 신(身), 언(言), 서(書), 판(判)등을 기준으로 삼기도 했다. 이러한 기준은 서기 618~907 년까지 290년간 존속했던 중국의 당나라가 관리를 뽑을 때 적용했다. 첫 번째 기준인 신은 외모다. 지금도 외모를 중시하지만 우선 외모에서 풍기는 것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읽을 수 있었다.

  인성의 대부분이 외모의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두 번째가 언변이다. 말하는 능력이 앞뒤가 맞고 조리가 있느냐 하는 기준 이다. 세 번째는 글씨의 필적과 글씨를 통해 그 사람의 실력과 됨됨이를 판단했던 것이다.

  마지막이 사물을 판단하는 능력을 보았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는 우리와 다르다. 외모보다는 전문적인 실 력을 우선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청년들의 일자리가 없어 취업하기가 바늘구멍이다. 때문에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아직도 외모를 중시하고 있다.

  상대방의 첫인상을 잘 살펴보면 그 얼굴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속성들이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다음엔 뒷모습이다. 누구든지 앞모습은 잘 보이도록 손질하지만 뒷모습까지 신경 쓰는 경우는 드물다.

  앞모습으로는 상대방을 속일 수 있어도 뒷모습은 불가능하다. 앞과 뒤가 현저히 다른 사람은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 속설이다. 지나치게 외모를 꾸미는 것 보다는 안을 채우는 것이 소중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간 상실과 가치관의 파괴로 혼란스럽다.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고 약자를 괴롭히는 ‘갑’ 질 논란이 하루가 멀다하고 일어나고 있다. 사회가 피폐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을 사귀는 것은 삶의 품격을 높이는 길이다.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갖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람을 잘 알고 사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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