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여파와 메리스로 점철된 을미년이 저물었다. 해마다 새해 벽두엔 희망찬 화두와 메시지로 맞이하지만 세월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사회적 갈등이 혼란을 가중 시키는 가운데 덧없는 세월만 지나쳐 가기 일쑤다.

  지난해 정치권은 흐트러진 혼돈의 모습 그대로였다. 안정된 경제와 일자리 창출의 창구에서 정치권은 언제나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한 해였다. 사회는 끊이지 않은 시위로 몸살을 앓고 계층간 갈등과 빈부의 불평등이 여전히 우리 사회를 농락하고 있다.

  성숙된 시민의식이 사라진 현장에서 학대받는 어린아이와 약자들은 그늘에서 짓눌린 채 해를 보냈다. 이제 병신(丙申)년의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지난 것은 뒤로하고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다. 되돌아 본다고 해서 돌아올 것은 없다. 후회만 남을 뿐이다.

  천간(天干)의 병(丙)은 씨앗이 줄기를 뻗는 모습이고 붉은색을 띤다. 지지(地支)의 신(申)은 원숭이다. 병신년은 한자 뜻대로 붉은 원숭이가 뻗어 나간다는 좋은 뜻을 담고 있다. 예로부터 원숭이는 지혜와 사교성의 상징이다.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한 해(936년)나 팔만대장경 제작이 시작된 해도 병신년 (1236년)이다. 이렇듯 좋은 새해엔 무엇보다 나부터 성숙된 모습으로 태어나길 희망해야 한다. 물 한 바가지 붓는다고 바닷물이 넘치지는 않는다.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억지로 바꾸려 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자연이나 인간의 본성이 원래 그렇다. 그러나 상대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나 자신의 본성을 변화시키는데서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

  장자 잡편 ‘서무귀’에는 화살 잡은 원숭이가 소개된다. 날아오는 화살을 손으로 척척 잡아내는 묘기를 부린다. 그러나 자만심에 차있던 원숭이는 한꺼번에 쏜 수십 개의 화살은 피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 자만과 교만이 죽음의 화를 부른 것이다.

  겸손의 미덕을 기리는 일화다. 병신년 4월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국회는 국민의 세금만 축낸 채 허송세월을 보냈다는 지탄 속에 있다. 우리 사회는 인명경시 풍토가 만연돼 있고 경제가 살아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그만치 국민들의 삶이 새해에 좋아질 것이란 기대치가 낮은 편이다. 홀로서기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새해에 대한 희망 기대치가 높을수록 실망감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겸손한 자세로 새해를 맞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이어령(李御寧)선생의 소원시 일부를 되뇌어 본다. “날게하소서... 뒤처진 자에게는 제비의 날개를, 설빔을 입지못한 사람에게는 공작의 날개를, 홀로 사는 노인에게는 학과 같은 날개를 주소서. 그리고 남남 처럼 되어가는 가족에게는 원앙새의 깃털을 내려 주소서, 이 사회가 갈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기러기처럼 나는 법을 가르쳐 주소서...” 그래도 병신년은 희망이 넘치고 축복받는 새해로 맞이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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