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한복판에
떠나는
여유로운 여정
 
 
  겨울의 한복판인 이맘때라면, 사람이 잔뜩 몰려드는 시끌벅적한 관광지보다 조용히 사색하며 산책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고즈넉한 장소가 오히려 더 좋은 법이다. 일기예보를 예의주시하다가, 햇살 가득한 어느 따뜻한 날을 골라 거울처럼 맑은 호숫가의 구절양장처럼 굽은 도로를 자동차로 달리고, 고요한 숲속 미술관의 뜰을 거닐어 보기도 하는 일은 도심 속에서는 실천하기 어려운 여행법이다.

  거기에 따뜻한 커피 한 잔 손에 들고 산책하며 일상의 짐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그 어떤 화려한 여행 플랜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경기도와 강원도의 경계 그 어딘가 자리 잡은 횡성은 이처럼 소박하고도 낭만적인 일정에 어울리는 부담 없는 여행지이다.

  횡성은 무엇보다 서울과 그 주변 위성도시를 기준으로 했을 때, 경기도 양평과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거리가 멀지 않아 좋다.  팔당에서 6번 국도를 따라 양평·여주 방면으로 달리다 보면 불과 1시간여 만에 강원도 횡성군 서원면 유현리에 닿게 된다.  유현리에는 드라마 <러브레터>의 촬영지로 잘 알려진 이국적인 자태의 풍수원성당이 기다린다.

이국적인
드라마 촬영지
풍수원성당

강원 횡성군 서원면 경강로유현1길 1097
☎033-343-4597 www.pungsuwon.org

 
 

  정조임금이 승하하자 노론벽파는 반대 세력인 남인에 대한 공세를 시작한다. 당시 천주교도들 중에는 남인이 많았기 때문에 이는 노론벽파가 남인세력을 제거할 좋은 구실이었다. 풍수원성당은 바로 이 무렵인 1801년, 신유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 신자들이 세운 성당이다.

  본래 여러 채의 초가를 성당 대신 사용하다가 100여 년 전인 1905년, 신도들이 직접 가마에 벽돌을 구워 성당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과거 초가에서 앉아서 미사를 드리던 전통을 그대로 이어오고 있는 풍수원성당은 지금도 내부에 의자를 찾아 볼 수 없다.  또한 성당과 운명을 함께 했을 수백 년 묵은 느티나무 두 그루와 고딕 양식의 성당이 어우러져 외국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풍수원성당은 사제(조현재)와 소꿉친구(수애)의 이루지 못할 사랑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 <러브레터> 배경이 되면서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후 여러 드라마와 영화의 촬영지로 등장하기도 했다. 성당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고딕 양식 건축물인 풍수원성당은 현재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9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자작나무숲 속
미술관을
산책하다

강원 횡성군 우천면 두곡리 5 (미술관자작나무숲)
어른 2만원, 3~18세 1만원
www.jjsoup.com
※수요일·공휴일 휴관

 
 
 
 
 
 
  다시 6번국도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면 금세 횡성읍에 도착한다. 횡성읍을 가로지르는 젖줄 섬강은 남한강의 지류 중 하나로 횡성군이 기대어 있는 어머니 산 태기산에서 발원해 이웃한 원주와 양평을 거쳐 두물머리에서 한강과 합류한 뒤 서해로 나간다.

  횡성읍내에서 섬강로를 따라 강줄기를 거슬러 오르면 태기산에서 발원한 물을 잠시 가둬 두는 횡성댐으로 갈 수 있다. 횡성댐으로 가면 물문화관과 댐 상부 일원의 시원한 풍경을 감상할 수 있고, 우천 쪽으로 향하면 미술관자작나무숲과 망향의 동산을 둘러보고 횡성 호수길을 걸을 수 있다. 특히 미술관자작나무숲은 꼭 한 번 들러봄직한 독특한 갤러리이다.

  원종호 관장과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미술관자작나무숲은 횡성읍내에서 멀지 않은 우천면 두곡리의 자작나무숲 안에 숨겨져 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색하고 싶다면 미술관자작나무숲의 뜰을 거닐어 보라. 퇴색한 잎들을 모두 떨구고 흰 몸뚱이를 드러낸 늘씬한 자작나무숲은 마치 나에게서 도시에서 묻어온 모든 탁한 찌꺼기를 씻어내는 필터같다. 갤러리 입장료에는 커피나 허브차 한 잔 값이 포함돼 있다.

발아래
펼쳐지는
첩첩 백두대간


횡성군 둔내면 태기리 산1-1(태기산 풍력발전단지)
☎033-340-2546 (횡성군청 문화체육과)

 
 
  백두대간의 등허리인 대관령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모습은 강원도 평창군에 위치한 대관령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그러나 횡성에도 그 못지않은 장쾌한 풍경을 자랑하는 장소가 있다. 횡성과 평창의 경계에 솟은 태기산이 바로 그곳.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는 횡성으로 떠나는 여정의 화룡점정을 찍는 숨은 비경이다.

  태기산의 이름은 진한의 마지막 임금인 태기왕이 이곳에 산성을 쌓았다는 전설에서 비롯됐다. 진한은 기원전 4세기 무렵까지 지금의 경상도 지방에 터를 잡았던 부족국가이다. 태기산 풍력발전단지는 힘들게 산행을 하지 않아도 찾아갈 수 있어 좋다.

  횡성 둔내면과 평창 봉평면을 잇는 6번 국도변 고개인 해발 920미터 높이의 양두구미재에서 임도를 따라 자동차로 오르면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어느정도 올랐다 싶으면, 눈꽃을 피워 올린 능선을 따라 풍력발전기가 줄지어 늘어서 있다. 다만 눈이 많이 내려 도로에 쌓인 상태라면겨울용 타이어나 체인을 준비해야 한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태기산 임도를 오르기 어렵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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