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여 년 전 평택과 아산 일대는 스러져 가는 조선을 삼키려는 일본군과 청나라 군대 간의 전쟁터였다. 남의 땅에서 치르는 청일전쟁 와중에 양 진영으로 끌려간 민초들이 자포자기하듯 내뱉은 말이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평택이 무너지나, 아산이 깨지나”라는 속담 같지 않은 속담이다.

  청을 격파한 일본 군은 본격적으로 지금의 팽성읍 안정리 일대에 진지를 구축하고 대륙 침략을 도모하다 결국 패망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하면서 이 땅에 들어온 미군은 당연한 듯 안정리 일본군 진지를 이어받아 사용해 오다 6.25를 맞았고 오늘날 주한미군 육군 사령부와 전 병력이 주둔한다.

  송탄에 자리 잡은 미 공군 기지 K-55는 6.25가 발발하면서 미군이 들어와 야리, 덕봉리, 신야리 일대에 사는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만들어진 비행장이다.

  1952년 한창 전쟁 중에 영문도 모르고 쫓겨난 이주민들은 수원, 용인, 화성 등 인근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거나 진위천 둔치에서 천막을 치고 사는 유랑민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뒤늦게 이주민들에 대한 보상책이 마련되는 듯했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돼 버린 채 쓰라린 역사의 뒷 켠으로 잊혀 갔다.

  주한미군의 상징적 존재로 막강한 전쟁 억지력을 보유한 송탄 미 공군기지가 최근, 60년 넘게 사용하던 기존 활주로 옆에 제2 활주로를 완공했다.

  활주로가 하나 더 생기면서 공군기지 주변 주민들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60여 년 넘게 밤낮 없이 뜨고 내리는 군용 항공기 소음으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입고 살아 왔는데 정당한 보상은커녕 피해가 더욱 커진다니 그 얼마나 허망한 노릇일까.

  이참에 당장 고향을 등지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현실이 어디 그리 녹록하기만 하랴.

  때 마침 수원에 있는 한국 공군 10전투 비행장 이전지를 물색한다는 언론 보도가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평택, 화성, 안성 등 지역이 유력한 이전지로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수원비행장이 이전하는 지역에는 수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액수의 보상책이 뒤따를 것이라는 소문도 있 다. 헛소문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5월 국방부와 수원시가 화성, 평택, 안성, 광주, 여주 등의 지역 관계 공무원들에게 비행장 이전에 관한 설명회를 개최하니 참석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평택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둘러 어쭙잖은 반응을 보일만한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뜻일까?

   그러나 비단 보자기로 똥 덩어리를 곱게 싸놓은들 어찌 냄새를 피하랴. 송탄 공군 기지 바로 옆 서탄면 일대가 수원비행장 이전지로 적지라는 소문이 갈수록 커져만 가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인걸.

  일부 주민들은 이왕에 미군 기지 소음 피해를 벗어나지 못 할 바에야 남은 땅에 한국군 비행장 하나 더 들어서는 게 무슨 대수냐고 항변한다.

  좋은 조건으로 땅 사주고 편안하게 살 곳으로 이주만 시켜 주면 그 또한 나쁠 게 없다는 계산이다.

  수원비행장 평택 이전설에 대해 아직도 평택시는 묵묵부답이다.

  시의회 또한 별다른 관심이 없는 듯하다. 미군 기지 이전이 결정될 당시 너무 쉽게 주민들이 동의해줘서 얻을 것을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다는 뒷공론이 무성했다.

  이번에는 확실한 대책을 세워 호구 신세만은 면해야 할 것이다.

  * 호구(虎口)의 사전적 의미 - 범의 아가리라는 뜻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이나 경우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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