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문 유기장
 이종문 유기장
  유기(鍮器).흔한 말로 놋그릇이며 구리를 주성분으로 하여 주석이 나 아연,니켈 등을 혼합한 합금 물질을 말한다.용해하는 기술과 각 성 분의 비율에 따라 색깔과 질이 결정되는데 정확히는 구리 1근+주석 168.7g을 섞은 것을 말한다. ‘유기장’은 이러한 놋쇠로 각종 기물을 만드는 기술을 지닌 장인을 말한다.금(金)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유기(鍮器).또는 금 다음가는 백금이라고도 칭하는 유기는 정확한 합금 비율과 정교한 기술이 있어 야 깨지지 않는 완벽한 그릇이 만들어진다. 이러한 전통을 유지하며 오늘날까지 이어온 안성시 무형문화재 제 2호 이종문 유기장을 만나봤다.  (편집자주)

  ● 제일가는 안성 주물유기
    유기를 만드는 기법은 방자기 법과 주물기법으로 나뉘는데 방자는 금속조직을 두드려 만드는 기법이며 주로 농악 기구를 만드는데 사용된다. 주물은 주형에 부어 만드는 것으로 수저와 식기 같은 작은 그릇을 만드는데 더 효율적인 방안을 고안하다 생겨난 기법이다. 안성은 이 주물기법의 그릇이 유명한데,지리적으로 영남 과 호남의 문물이 모여드는 곳이 었고 조선시대 경제의 요충지였다. 이로 인해 서울의 양반가로부 터 주문을 받아 유기그릇을 제작했다. 정교한 제작기법과 뛰어난 합금 기술로 인해 품질과 모양이 좋아 사람들 마음에 꼭 들었는데 그로 인해 ‘안성맞춤’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다.

  “안성에서 나고 자랐죠.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기 저기 지방을 떠돌아다닌적은 있어요. 전국을 다니면서 기술을 익혔죠.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랐지만 그때는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호기심이 생겼고 뒤늦게 이 일에 빠져들게 됐어요”

  ● 전통을 유지하다
    유기그릇은 정확히 언제부터 라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는 대략 청동기시대부터 쓰이지 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 삼국시 대에 더욱 확대 사용됐고 식기를 비롯해 불상,범종,제기와 향로, 촛대에 이르기까지 유기는 우리 생활에 다양하게 쓰여왔다. 고려시대 절정에 다른 제작 솜씨는 외국 사신들로 하여금 우리 대표 물품으로 유기그릇을 가져가게 하였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였던 유기그릇을 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까?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이 탄피를 만들기 위해 유기그릇과 재료를 모두 가져갔다. 그로 인해 유 기그릇은 좀체 찾아볼 수 없었 고 일제시대때는 최소한의 그릇 만 만들게 됐다. 이후 몇몇 곳만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 6.25전쟁 이후 사람들은 가볍고 쓰기 편한 스테인리스 그릇을 사용하게 됐으며 재래식 아궁이가 연탄으로 바뀌면서 연탄에서 발생되는 가스로 인해 놋그릇이 변색되는 바람에 사용을 안하게 됐다. 또한 일이 힘들고 고되 사람들이 점차 기피하게 된 이유도 포함된다.  

   “흙 속에 쇳물을 채워 만드는데 이 무게가 50kg가 넘어요. 아무리 힘 좋은 성인이라도 하루에 50kg짜리를 몇 번씩 들었다 놨다 한다고 생각해봐요. 감당이 안되죠.지금은 다 기계화가 돼있어서..사실 누가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할수도 있어요. 근데 기계에 들어가면 그릇의 질이 좋지가 않아요. 기계로 만든 유기그릇은 두껍고 무거워서 사람들이 쓰기에 불편하거든요. 재료가 더 많이 들어가니 값만 비싸지죠. 그래서 전통적인 방식이 필요한 거에요.”

  ● 과학의 그릇
    유기그릇은 생명의 그릇이라고도 불리는데 유기그릇에 따뜻한 음식을 담으면 따뜻하게,차가운 음식을 담으면 차갑게 온도가 유 지되고,살균 기능이 있어 음식이 쉬이 상하는 것을 막아줘 식중독을 예방하는데도 보탬이 된다.

  이렇듯 유기그릇은 그 제작과 정에 있어 참으로 과학적이지 않을 수 없다. 금색에서 오렌지빛으로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을 놓치면 생명의 그릇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

   “쇳물도 생선이 금방 상해버리 듯이 빨리 식거든요. 그 순간을 놓치면 안돼요. 적당한 온도에 맞춰 쇳물을 부어줘야 돼요.그것은 그릇마다 다 달라요.” 꽃을 유기그릇에서 키우면 다른 곳보다 더 오래가고, 절에 달아놓은 풍경은 산짐승을 오지 못하게 막았으며, 미나리에 놋수저를 함께 놓으면 거머리들이 달아 났다고 한다.

  이렇듯 유기그릇은 과학적이면서도 신비하기 그지없다.

  ● 인재개발이 가장 중요
     “젊은층을 증원하려고 모집 광 고를 냈는데 6개월 동안 연락이 없더군요. 만약에 대기업에서 모 집 광고를 냈다면 아마 많이 몰렸 겠죠? 생소하니까 도전하지 않는 거죠. 다들 꿈과 이상은 큰데 할 생각을 하지 않는거 같아요.아무 래도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힘든 일은 안하고 싶겠죠. 그래서 말인데,공장을 크고 예쁘게 다시 지으려고요. 어디 가나 이미지가 참 중요하잖아요. 이렇게 힘든 일 한다고 정장 입고 좋은 레스토랑 가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사람들의 편견부터 깨고 싶어요”

  이종문 유기장은 나이만큼 생각도 젊은,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유기그릇과 같이 유쾌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제가 너무 젊다고 생각해요.사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린아이라도 기술을 알려주고 연습만 한다면 누구나 만들어 낼 수 있죠. 그래서 잘 만들기만 하다면 초등학생 이라도 문화재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은 생각의 차이에서 나온다. 같지 않음으로 인해 새로운 도전을 꿈 꿀 수 있다. 그는 지금 세대교체를 준비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은 머리도 좋고 힘도 좋고 가르쳐주기만 하면 금방 금방 잘 표현해 내요. 반복작업이다 보니 자꾸 연습 하고 익히면 다 할 수 있는거에요. 거기에는 이론화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준비중이에요.

   ● 다양한 그릇,새로운 도전
    “항아리 있잖아요.항아리의 완만한 선이 유기하고 잘 맞고 우리 정서에도 맞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주물로 표현해 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일반 인들이 많이 접할수 있는 것을 많이 개발해내야 많이 알려지 겠죠. 이를테면 라면도 끓여 먹고..옛날처럼 다시 다양하게 쓰일 수 있게 만들고 싶어요.”

  전통과 미래의 교집합점을 찾기 위해 그는 오늘도 고군분투한다.

  “공장에 체험장도 만들고 먹거리도 제공하고 요즘 커피들 많이 마시니까 카페도 하나 만들고. ..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일을 하게 되며 내가 왜 하게됐나 후회한 적도 많았지만 유기에 대해 그는 말한다.

  “그냥 인생이에요.모든 것이 담겨있다고 보면 돼요.”

  유기장의 인생까지 담겨있는 그것은 우리의 전통과 문화,혼을 담은 진정한 생명의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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