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의 첫 단추를 채우면서 나는 이렇게 말했었다. "새해에는 넓은 마음으로 흐르는 강물처럼 살자"고. 식혜 위 동동 띄워진 밥알처럼 먹은 마음들이 올 한해를 살면서 다 어디로 흘러가고 빈 배 같은 출구를 허겁지겁 빠져나가려 하는지 제법 든 나이 앞에서 잠시 주춤거린다.

  열정이 사라지는 삶의 순간 이 제는 두려워지기 시작하는 숫자 28/12/14년을 바코드처럼 읽고 넘어가는 밤, 청춘의 꽃들이 산란하던 순간과 함께 랭보의 시가 다가든다.

  (육체, 대리석, 꽃, 비너스, 내가 믿는 건 그대에게 있다 그래 인간은 슬프고 추하다, 이 거대한 하늘 아래에서 슬프다)

  격정적이고 몽환적인 그의 시에서 왜 나의 헛된 욕망이 비치는 건가.

  온통 시끌벅적한 소식들로 장식한 한 해의 끝자락 연말이 되자 훈훈한 미담도 들려온다, 소리 없이 자선냄비에 몇 년째 1억 원을 넣고 간 자신을 알리지 않는 기부하는 사람의 얘기가 그나마 이 사회를 아름답게 한다.

  어두운 사회 이면을 보이지 않게 따스한 손길을 보이는 자원봉사들이 참 많다.

  지체 장애 딸이 있는 직장동료 원희는 세 아이의 엄마다.

  작은 반지하 빌라에 살면서 장애아 모임 봉사와 어르신들 밥봉사, 의용소방대 식사 봉사, 얼마 전 해마다 치르는 사랑의 연탄 나누기 행사에 몸소 실천하는 본을 보이면서 밝고 기쁨의 미소 환한 그녀 모습에 내 삶의 정곡 이 콕 찔린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얼마나 개인적 애민에 허덕이며 살아왔는지 절로 부끄러움이 인다.

  손칼국수 장사를 하며 틈틈이 고물을 모아 이웃을 돕는 노부부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 장애아를 둔 부모가 계기가 되어 다양한 봉사활동과 사회적 기업을 차려 장애우에게 뜨개질 같은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 바자회도 하며 사랑을 쏟는 분이 있는가 하면 이름 모르게 작은 단체에서 정기적으로 참된 사랑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어두운 뉴스에서 살짝 절망 한 켜를 덜어내 본다.

  한 해가 가면 나는 한 살이 더해 진다.

  값진 일은 멀리 있지 않다는걸 이미 잘 아는 나이지만 내게 드리워진 그늘 때문에 주변에 등불 밝히는 것에 소극적 이였다.

  내 아래 더 어두운 마을을 향해 손길을 뻗을 때이다. 마음으로만 그치지 않고 새로운 양의 해에는 양같은 마음으로 따스한 마음 보여야함을 다짐해본다.

  마음의 숲이 칙칙하지 않도록 인정이란 것을 가세해 볼 그 요량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지 않도록 대리석처럼 탄탄한 심장이 되어 사람을 노래하는 사랑의 랭보가 되어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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