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바람을 잠재울 수 있는 마력의 시간이 풀칠을 하고 있다.

  입동이 되면 모진 바람의 침입을 막을 비방들이 어수선한 시선 들을 채근하면서 입을 봉하듯 문 틈새를 메운다. 이가 잘 맞지 않는 창호지 문 뒤로 수런거리는 근심들이 기웃 거리던 하루해를 누이면서 한기가 두려운 긴 겨울 밤을 다독거려 잠을 청해 보지만 시린 어깨만큼이나 가슴 한켠에 파고드는 적막의 시간들이 긴 한숨과 함께 늘어나고 있다.

  새 학기 아이의 등록금 마련에 잠을 설친 밤들과 딸아이의 혼사를 앞둔 가난한 농군의 깊은 한숨이 궁색하도록 길기만 하던 어머니의 겨울밤은 초저녁달이 기울고 나서야 이슥한 새벽을 헤치고 문풍지 소리에 묻혀 잠이 들었다.

  세상 밖을 모르던 여섯 살 아이의 꿈자리를 할퀴던 밤 부엉이 소리는 밤이 깊어 갈수록 그 부피를 더하여 아이의 머리맡을 서성이다가도 윙윙 울어 대는 문풍지 소리를 경계로 사라지던 밤들이 인생으로 한두 발씩 서려진 오늘 바람 한점 새지 않는 홈 새시 문 틈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아득한 옛 문풍지 소리를 회상해 본다. 세상의 삭풍들이 마음을 할퀴는 요즘 어수선한 시사들을 잠재울 아날로그 문풍지가 필요하다. 쓰다 남은 창호지 조각이 필요한 세상이다. 인간 군상들이 모이고 흩어지면서 버리고 지나간 휴지 조각 같은 사건들의 활자들로 가득 찬 신문지 한 조각이 절실하다. 창호지가 궁하던 시절 누런 신문지가 흑 바람벽을 감싸 안고 너덜해진 문풍지를 대신하던 빛 바랜 어머니의 지혜가 그리워진다. 무리가 서로를 배반하기보다는 바람과 안방 사이를 중매하듯 밤새 울어대던 문풍지의 지혜가 절실한 세상이지만 서로를 봉합 해 줄 배려보다는 시기와 반목이 갑이 돼 버린 세상에 긁힌 상처를 감싸줄 문풍지 같은 시간들이 필요하다.

  벌통 속에 일벌의 수가 줄어 협동심을 잃으면 벌들은 일을 멈추고 자기 영역 다툼에 온 체력을 다 쏟다가는 몰살을 하기도 한다. 양봉업자는 이러한 벌통 두개를 한통에 합쳐 사기를 돋우고 일을 하도록 유도한다. 이를 합봉(合蜂)이라 한다. 그러나 사건은 그리 쉽게 귀결되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서로의 세력 다툼으로 당파 싸움에 서로가 죽고 죽이면서 급기야는 다시 반통밖에 남지 않는다. 지혜가 부족한 탓이다. 서로를 지켜보고 이해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배려 하지 않은 결과에서 온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성인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안방의 온기와 문밖의 한기를 잠재워주는 문풍지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두 무리의 벌들 사이에 신문지 한 장을 가로막아 주는 것이다. 서로를 경계하고 대적할 시간차 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얇은 신문지 한 장 사이로 서로의 호기심을 무기로 탐색할 시간을 배려해 주는 것이다. 좁은 구멍을 뚫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며 급기야 장벽을 헐고 하나가 되기를 갈망 할 때쯤 너덜해진 신문지를 제거 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극히 허름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요즘 더욱 칼바람 새어들던 긴 겨울밤을 지켜주던 문풍지가 필요한 시간이다.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면서 한파 주의보에 가슴 죄던 시간들을 은근히 데워줄 마음의 문풍지를 바르는 시간. 애정과 우정이 경계를 허물고 마음을 여는 사랑의 문풍지를 바르는 시간. 너와 내가 온도차를 좁히고 가슴을 여는 여유로움으로 내일을 준비하는 화합의 문풍지를 바르는 시간.

  지금 내가 서있는 이 순간을 불투명한 내일의 두려움과 완충 시켜 주는 누런 신문지 쪼가리 같은 너덜한 지혜의 문풍지를 바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甲午年 歲暮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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