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거실에서 삼겹살이 익는 소리는 귓전을 흔들기에 너무 흥청 거렸다. 다음으로 이어질 장면에 대 한 아련한 추억 같은 술상! 지글거 리던 일상을 들볶듯 익어가는 살들의 항변 같은 시간. 술 몇 모금이 전 부인 오늘의 끝을 정리하다 문득 수박 한쪽을 집어 든다. 창가의 이름 모를 화분속 주인들이 분무기를 향 해 입을 벌리듯 한입을 베어 물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 본다.

지난해 어느 날 오후 퇴근길에 관리부 수복 동료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집도 가깝고 하니 만나서 저녁을 함께 하자는 내용이었다. 흔쾌히 둘은 고기 뷔페로 들어섰고 맞이하는 직원의 안내로 자리를 정했다. 오늘처럼 고기들이 털털대며 불판 위를 달리기 시작했고, 몇 순배의 술잔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쯤 더 이상 고기들의 외출은 평정을 찾고 좌정하였고 술상 위론 이야기꽃 들이 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만남의 자리는 여운 없이 익어 갔다.

이후 몇 차례의 약속들이 성사되었고 늘 즐거움으로 자리를 마치곤 했다. 그럴 때마다 시간은 협의하였지 만 장소 선택은 자연스럽게 친구의 몫이었다. 물론 같은 식당이었다. 어느 날 아름답고 발직한 친구의 고백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여인의 관심을 얻기 위한 아름다운 시나리오에 난 들러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던거 였다. 혼자서는 어려운 이 길을 들어설 용기가 필요했던 그는, 나와의 동행을 통해 둘만의 분위기를 엮어 가고 있었던 것을 짐작했다.

젊음과 사랑의 정비례 논리는 식상하다. 불혹(不惑)의 세월을 지나 지천명(知天命)의 터널을 중반쯤이 나 통과한 이들에게 아름다운 늦 사랑이 싹트고 있음이 아이처럼 풋풋 함을 느꼈다. 서로의 아픈 상처를 감싸는 부드러움이면 충분할 것, 이해하며 깊어가는 사연이면 넉넉할 것, 조금만 내려놓으면 가벼운 내일 이 온다는 것을 일찍이 체득한 이들 에게 웃음이 만발하길 기원한다. 가을꽃처럼 매쾌한 지난날들이 주 마등처럼 스치는 날들을 긴 겨울잠을 헤치고 옷을 벗는 봄 새싹처럼 새 록새록 돋아나는 푸르름으로 가득 한 시간들을 정리하며 함께 하길 바란다.

지금 이 삼겹살이 익어가는 거실처럼 고소한 시간이 이어질수 록 창가에 심어놓은 소속 없는 저 화 분 속 생명들이 왕성해 질 것을 안다. 주인 잃고 버려진 꽃들을 수거 해 예쁜 화분속에 둥지를 틀어놓고 내일의 희망을 부르는 저 여인의 섬 세함과, 화분 계단을 조립하고 있는 한 사나이의 우직한 사랑이 있는 한 부디 행복 하리라. 누구나 한때 깨진 화분 속에 버려진 꽃들처럼 허리 부러진 날들 없었으랴! 가장 낮은 곳에서 단 한 계단만 올라보려 발버둥 치던 과거 없었으랴 만은, 거센 풍랑은 강인함을 잉태하고 갈급함은 성취를 얻는 진리를 아는 저들의 사랑은 잘 익은 수박 속처럼 열정적 빛깔과 달콤함이 함께 할 것이다.

거나한 술잔을 내려놓고 등장한 후식용 수박이 잘려지고 있었다. 수 박 향이 금세 거실 안을 장악했다. 고소함과 싱그러움이 화분 속을 가득 메웠다. 오늘밤 다시 태어난 저 화분들처럼 안온하고 촉촉한 꿈 에 부풀기를 축원하며 수박 한입을 베어 무는데 이어지는 수박 사연을 듣고 소스라친다. 며칠전 친구와 회식으로 함께 했던 밤 힘들고 지친 여인을 위하여 수박 한통을 사들고는 거나한 취기에 몇 차례 부딪치고 놓치면서도 끝까지 들고 온 사연의 수박이란다.

아름답다는 말의 용처를 확실하게 일깨워준 깨진 수박 속 의 사랑 이야기가 한입 가득 머금은 과즙처럼 달콤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도 고소함과 싱싱함이 자라고 있는 화분 가득한 그들의 거실 창가에 시선이 머물러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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