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녁, 오랜만에 아이들과 함께 TV 앞에 앉았습니다. 불후의 명곡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기도 합니다.

그날 불려진 노래들의 주제는 가족이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지나면서 다시 한번 가족의 소중함을 생 각하게 되는 시의 적절한 주제였습니다. 김진호라는 가수는 조성모와 거미에 이어 세 번째 무대에 등장하였습니다. 앞서 노래한 가수들에 비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습니다. 게다가 바로 앞에 연주한 가수 ‘거미’는 엄마와 함께 나와서 패티김의 ‘사랑은 영원히’를 열창하였는데 그 무대도 참 감동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사실 저는 김진호라는 이름 모를 가수에게 특별한 기대를 걸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가수의 노래를 듣는 동안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 눈물은 (제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은총이 었습니다. 가수 김진호는 중학교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진호씨는 변변한 가족사진 한 장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어머 니와 함께 찍은 사진에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합성하여 가족사진을 만듭니다. 사진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사진을 만들면서 그가 제일 잘하는 일, 노래를 만듭니다.

사랑하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보이지 않는 ‘노래 가족사진’을 아버지를 닮은 목소리로 인화했던 것입니다. 가족사진의 노랫말 입니다. “바쁘게 살아온 당신의 젊음에 의미를 더해줄 아이가 생기고 그날에 찍었던 가족사진 속의 설 레는 웃음은 빛바래 가지만 어른이 되어서 현실에 던져진 나는 철이 없는 아들이 되어서 이곳저 곳에서 깨지고 또 일어서다 외로운 어느 날 꺼내본 사진속 아빠 를 닮아있네 내 젊음 어느새 기 울어 갈 때쯤 그제야 보이는 당신의 날들이 가족사진 속에 미소 띈 젊은 우리엄마 꽃피던 시절은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 그을린 그 시간들을 내가 깨끗이 모아서 당신의 웃음 꽃 피우길”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 셨던 분들이 있습니다.

의료시설도 변변치 않았던 그때, 우리의 어머니들은 우리를 낳기 위해 자신을 던지심으로 생명의 거름이 되셨습니다. 불과 반세기 전에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대한민국을 지금의 잘사는 나라로 만드시기까지 우리의 아버지들은 죽는 것보다 고통 스러운 일들을 몸이 부서져라 감당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생명의 거름과 희생 위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급속한 노령화를 걱정합니다. 나는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더 부자가 되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늘어가는 노인들이 걱정거리 이겠지만, 돈이 아니어도 더 행 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들에게 노인들은 나를 빚으셨던 생명의 거름입니다.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급속한 노령화의 위기는, 아무도 만들어 내지 못한 노인공경의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기회이기도합니다. 나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 버렸던 그 사랑을 기억한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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