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침 정원에는 장미의 꽃빛들로 가득하다. 그 빛들로 소리 내어 피는 장미와 장미 사이를 나는 심장 소리만 들려주며 걷는다. 양지 아닌 그늘에서 간신히 피고 있는 하얀 장미의 자태도 의연 하다. 내게 있는 못된 구석도 자연 노란 장미 빛 아래로 불려 나 와 웃는다. 이 봄 내내 마음속 심란함을 안고 새소리와 장미가 피는 소리에 겨우 발걸음이 따라가는 오로지 나만의 아침이다.

꽃나무 아래로 심긴 팬지, 붓꽃, 패랭이 꽃빛의 이름들이 어디에서 와서 내게로 닿아 만져지는 것 일까. 시간에 따라 시간과 함께 숲이 되어가는 침묵 사이로 나와 꽃들은 하나가 된다. 열흘 붉다가 또 열흘 스러진다. 그리고 여름이 오고 가을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칠 것이다. 나와 장미는 이 정원에서 보이지 않는 뿌 리만을 남긴 채 된서리 맞은 풀과 다름없이 죽어 가야 한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활짝 열린 장미에 흡수되어 피워내는 일뿐이지 않을까. 꽃나무 내부에서는 마 디마디 시인의 눈길이 담긴 표현이 오래도록 뿜어져 나오고 있다.

장미의 내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어디에 이런 내부를 감싸는 외부가 있을까
어떤 상처에 이 보드라운 아마포를 올려놓은 것일까
이 근심 모르는 활짝 핀 장미의 내부 호수에는
어느 곳의 하늘이 비쳐 있을까
보라, 장미는 이제라도 누군가의
떨리는 손이 자기를 무너뜨리리라는 것을 모르는 양
꽃 이파리와 꽃 이파리를 서로 맞대고 있다
장미는 이제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 없다
많은 꽃들은 너무나 충일하여 내부에서 넘쳐 나와
끝없는 여름의 나날 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점점 풍요해지는 그 나날들이 문을 닫고,
마침내 여름 전체가 하나의 방,
꿈속의 방이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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