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상시에는 잘 모르겠는데 달이 바뀌면서 지난 달력 장을 떼어 낼 때면 날짜가 참 빨리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금년 들어서도 벌써 두 번째 달력 장을 뗀다. 요즘은 달력도 여러 가지 종류가 나온다. 특별히 돈을 주고 사지 않아도 연말이면 은행에서, 직장에서,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에서 자기네 자호가 들어간 달력을 만들어서 제공하기에 쉽게 얻을 수가 있다.

명화나 미인이 인쇄된 달력도 있고 그림은 없지만 양력과 음력 날짜가 함께 들어 있는 큼직한 달력도 있어 특히 노년층이 보기 좋게 된 것도 있다. 또, 노트 장만한 크기로 되어 책상 위에 세워 놓고 매달 각 날짜의 칸 여백에 일정을 적어 넣어 잃어버리지 않고 실행 할 수 있게 된 것도 있다.

무엇보다도 요즘 달력은 지질 이 좋은 아트지로 되어 있어서 달이 바뀌어 지난 달력 장을 뜯어낼 적마다 그냥 버리기가 너무 아까워서 혹시 쓸데나 있을까 하고 한 구석에 모아 두는 때도 있지만, 나중에는 별로 쓰지도 못하고 결국 묵은 신문에 끼워 폐지로 버리곤 한다. 이럴 때마다 지난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고등학교를 거치는 동안 변변한 노트(그 당시는 공책이라 했음) 한 권 써 보지 못한 기억이 떠오른다.

문방구점에서 파는 노트가 있었지만 그나마도 돈 주고 사기가 여의치 않아 지물포에 가서 재생지인 누르스름한 갱지 나 그보다도 더 질이 낮은 거무스름한 색깔의 거친 선화지를 사다가 노트 크기만 하게 잘라서 실로 꿰어 맨 자작 노트를 써야 했다. 갱지나 선화지는 노트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는 시험지나 공 문서 용지로도 사용했다. 그리고 다 쓰고 난 노트는 버리지 않고 습자 연습지로 사용했다.

그 당시도 희고 좀 두껍고 매끈한 모조지 라는 게 있었는데 이 모조지는 비 싸서 좀처럼 사서 쓰질 못 했다. 이 시절, 어쩌다 인근 미군 부대와 자매결연이라도 맺으면 가끔씩 학용품과 종이를 선물로 가져왔는데 모두 처음 보는 고급품이라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 였다. 이 용지는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A4용지이고 거기다 여러 가지 색이 입혀진 용지도 있었다. 이 귀한 종이를 함부로 사용하기에 너무 귀하고 아까워서 학교의 큰 행사가 있을 때 안내장이나 순서지를 제작하는 데 쓰기도 했다.

8.15 해방, 6.25 전쟁, 5.16혁 명, 70~80년대 산업화에 이르는 동안 나라의 열악한 경제 사정으로 온 국민이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살았다. 5.16 직후에, 그리고 새마을 운동이 한참 벌어질 때만 해도 물자 절약 운동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용지의 절약 운동도 철저했다.

학교도, 관공서도, 모든 용지는 반드시 양면을 다 사용하되 그 것도 되도록 여백을 많이 남기지 않도록 사용케 했다. 심지어는 야간에 암행 감사반이 학교나 관공 서에 침투해 휴지통이나 책상 서랍을 뒤져 몇자 쓰지 않고 구겨서 버렸거나 찢어버린 용지를 발 견하면 그 당사자를 색출해서 징계조치를 했다. 이러던 시절을 거쳐 종이의 역사는 흘러 옛날의 최고급 용지인 모조지보다도 더 고급지인 오늘의 A4 용지나 아트지를 넉넉하게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지금은 모든 문자를 손으로 쓰는 시대가 아니고 타자하여 바로 인 쇄가 되는 시대이니 만큼 A4 용 지 같은 지질이 아니고서는 불가능 한 것이다. 풍요로운 이 시대에 살다 보니 종이 한장, 휴지 한장 쓰는 것, 아까운 생각 없이 한낱 길가의 풀잎 하나 뜯어 버리듯이 쓴다. 뜯어 버리는 달력 장의 눈처럼 희고 두껍고 반질한 그 멀쩡한 뒷면, 옛날 같았으면 얼마나 요긴하게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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