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은 우리가 모르는 사이 사람들의 생각이나 언어,행동,용모,의상 그리고 생활양식, 풍습 등 여러분야에서 끊임없이 변해가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시대를 단절해서 비교해 보면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지금부터 60년 전으로 되돌아가서 그 시절의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살펴본다면 과연 저런 모습으로 살았던가 하면 실소가 절로 나오곤 한다.

60년 전이면 필자는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그 당시 학생들의 복장을 보면 전국의 학생들이 거의 똑같은 모양의 검정색 교복과 교모를 착용 했었다. 그 디자인도 지금처럼 신사복형이 아닌 일제 강점기의 학생 복장 그대로의 디자인에다 학교별로 고유의 모표와 배지를 달았을 뿐이었다. 여학생들도 거의 같은 디자인에 감색(검남색) 교복으로 상의에 하얀 깃을 덧달고 하의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스커트였다.
 
머리 모양도 남학생은 무조건 삭발이었고 여학생은 귀 밑을 경계로 한 단발이었다. 이런 모양의 두발 복장이 교칙으로 정해져서 엄격히 지켜졌고 위반 시에는 교칙에 의해 벌을 받아야 했다. 초등학생들은 복장이나 두발의 규제 없이 자유로웠으나 중학교 입학과 동시에 삭발, 단발을 하고 교복을 반드시 착용해야 했다.

일반 성인들은 두발이나 복색은 자유로웠으나 지금처럼 다양한 디자인이나 여러 가지 색상의 옷은 거의 없었고 단조로운 디자인에 흰색 아니면 검정색, 회색의 옷 색깔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일상복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도 많았다. 또한, 갓 쓰고 두루마기를 입거나  비녀 꽂아 쪽진 머리에 한복을 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흔히 볼 수 있었다.
 
당시는 전쟁 전후한 어려운 시절이라 외국 우방국가에서 교회나 여러 자선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소위 구제품 의류가 많이 나돌았다. 그 구제품 의류는 여러 가지 색상과 디자인의 것이 많아 입고 나서면 바로 눈에 띄어 구제품 옷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 그 시절만 해도 그런 옷에 대한 생소한 면도 있는 데다 좀 품격이 떨어진다는 느낌도 있어서 여유 있는 사람들은 잘 입지 않았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의 모습은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색상과 디자인이 혼란스럽고 요상해서 기피하던 구제품 옷이 지금은 그보다도 더 혼란스럽고 별난 디자인의 개성 있는 옷을 일상적으로 입고 다닌다. 학생들의 두발도 아무런 규제 없이 각자 취향대로 기른다. 여학생들의 어깨를 넘어 등까지 길게 늘인 머리는 소녀들의 상징이 되었다.

성인들은 남·녀 구별 없이 자기 취향대로 머리에 염색도 하고 살갗에 문신도 한다. 그뿐이랴, 얼굴도 성형을 해서 예쁜 얼굴로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서울의 강남 번화가에 가면 여인들의 얼굴이 모두 똑같아서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도 있다. 요즘은 젊은이들이 취업을 하는데 관상, 인물 평가를 한다고 해서 웬만하면 다 얼굴 성형을 한다고 한다. 자녀들의 혼사를 앞두고 양가 상견례에 참석하기에 앞서 어머님들도 성형을 하는 게 유행이라 한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 그것을 감히 다치거나 못쓰게 하지 않는 것이 효의 시작이다-이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그랬던 시대는 흘러갔다. 밀물같이 밀어닥치는 시대의 변화를 누가 막으랴. ‘성인종시속(聖人從時俗)’이라, 성인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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