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
박기철 교수

홍슈취안이 기독교 사상을 처음 만난 건 22살이 되던 1836년이다. 과거시험을 보러 광저우로 갔다가 시험에 떨어진 뒤, 중국인 최초 목사인 양아발(梁亞發)이 편집해서 만든《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권세양언》은 성경의 내용을 중국인 전도 목적으로 요약한 책으로, “세상에 주는 복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홍슈취안은 기독교와의 첫 만남에서 별다른 감흥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 1837년에 과거시험에 또 실패한 후 40일 동안 병상에 있으면서 기이한 꿈을 꾸고 환상을 보게 되었다. 홍슈취안은 꿈속에서 하늘로 올

박종우 교수
박종우 교수

라가 상제(上帝)를 만나고, 상제로부터 세상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홍슈취안은 1843년 마지막으로 치른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후, 생계를 위해 고향에서 서당을 열고 훈장이 되었다. 훈장으로 있으면서 1836년에 접했던《권세양언》을 자세히 읽을 기회가 있었다. 《권세양언》을 정독한 후 홍슈취안은 1837년에 꾼 환몽의 내용을 사실로 여기게 되었고,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동생이라고 믿게 되었다.

《권세양언》은 성경의 일부만 발췌하고 양아발 목사가 자신의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책이어서 기독교 본질을 왜곡할 가능성이 컸다. 이 책은 우상숭배와 강간 등을 금기시하고 구원과 지옥을 강조하는데, 이는 부패한 청나라 사회에 심판이 임박했다는 메시지로 민심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홍슈취안은 스스로 세례의식을 행하고 서당 안에 모셔 두었던 공자의 위패를 파괴해 버렸다. 이는 상제 외의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로 여기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 후 홍슈취안은 고향 친구이자 객가 출신인 펑윈산(馮雲山)과 친척 동생인 홍런간(洪仁玕)에게 전도하고 세례도 주었다. 

홍슈취안은 펑윈산과 홍런간 등의 사람들과 함께 배상제회를 조직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 그는 이름도 바꿨는데, 본명은 홍런쿤(洪仁坤)이고 어릴 때 이름은 홍훠슈(洪火秀)였다. 상제의 이름인 여호와를 중국어로 음역하면 ‘예훠화(耶火華)’가 된다. 유교 문화에서는 황제나 선조의 이름에 쓰인 글자를 피해 이름을 짓는 피휘(避諱) 관습이 있다. 이 관습에 따라 ‘훠’ 자를 ‘취안’으로 바꿔 홍슈취안(洪秀全)으로 개명한 것이다.

공자의 위패를 파괴한 뒤, 홍슈취안은 고향에 남아있을 수 없어 다른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 그와 펑윈산은 광둥성 서쪽에 있는 광시성(廣西省)으로 향했다. 이들은 상제를 믿으면 재난을 피하고 천국에서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전파하며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특히 광시성에는 본지인과 갈등이 많은 객가 출신의 농민과 노동자가 많았고, 이들이 합류하면서 약 3,000명의 신도를 얻었다. 이로 인해 광시성은 배상제회의 근거지가 되었다.

배상제회가 세력을 확장하는 동안 청나라 조정은 크게 주목하지 않았다. 이는 청나라 조정이 천지회(天地會)의 반란에 대처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천지회는 주로 청나라 만주족에 대한 반감을 가진 한족 중심으로 구성된 비밀결사 조직으로, 만주족 지배를 종식시키고 명나라를 복원하려는 목적으로 활동했다.

천지회는 동맹과 형제애를 중시하는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회원들은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며 강한 결속력을 보였다. 이러한 요소는 배상제회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어 후에 배상제회의 중요한 일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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