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
박기철 교수

아편전쟁이 중국 근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고, 태평천국운동(太平天國運動 1851-1864)은 그 뒤를 이은 중요한 사건이었다. 이 운동의 지도자 홍슈취안(洪秀全, 1814-1864)은 기독교 사상에 영감을 받아 하나님을 숭배하는 ‘배상제회(拜上帝會)’를 만들었고 지상에 천년왕국을 건설하려는 목표로 민중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1814년 광저우 화현(花縣)의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선조는 객가(客家, hakka)출신으로 광둥성 동쪽의 자잉주(嘉應州)에서 서쪽 화현으로 이주한 가문이었다. 객가는 중원

박종우 교수
박종우 교수

의 전란을 피해 남쪽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된 사람들의 집단을 지칭한다. 대부분 권력의 투쟁에서 밀려나거나 삶의 터전을 잃은 가문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형성되었다.

객가는 문자 그대로 ‘외부 사람’이라는 뜻이다. 즉 이미 정착된 지역이나 마을에 새로운 가문이 이주하여 정착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과정에서 정착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이 종종 발생하는데 이 때문에 객가는 주로 다른 지역민이 살지 않는 땅을 개척하여 공동체를 형성하는 특징이 있다.

객가 출신인 홍슈취안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배경으로 인해 강한 결속력을 지니고 있었으며, 가문의 명예를 회복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과거시험에 큰 가치를 두었다. 

홍슈취안은 어린 시절 가문으로부터 총명함을 인정받아 7살 때부터 마을 학교에서 공부를 시작했고 그의 최종 목표는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중국에서는 관리 선발을 ‘선거(選擧)’라고 했으며, 당나라 시절에는 관리 선발을 위해 50여 가지의 시험 과목이 있었는데, ‘과목에 따른 선거’를 줄여 ‘과거(科擧)’라고 부르게 되었다. 송나라 시기에는 진사(進士) 시험만 남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사 시험이 아닌 과거로 칭하면서 중국에서의 관리 시험은 과거로 통칭하게 되었다. 과거시험은 본래 황제가 문벌귀족 출신의 관료들을 대체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한 제도였다.

청나라 시기의 과거시험은 대체로 현시(縣試, 지역 시험) → 원시(院試, 학교 시험) → 향시(鄕試, 지방 시험) → 회시(會試, 전국 시험) → 전시(殿試, 황실 시험)의 단계를 거쳤다. 원시에 합격하면 생원(生員)이 되고, 향시에 합격하면 거인(擧人)이 되며, 전시에 합격하면 진사(進士)가 되었다. 전시에서의 1등은 장원으로 불렸다. 진사가 되기만 해도 고위 관직에 오를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홍슈취안은 1827년, 13살의 어린 나이에 현시 시험에 합격했으나, 이후의 원시 시험에서는 번번이 실패하여 생원 자격을 얻지 못했다. 22살이 되던 1836년에도 원시 시험에 응시했지만 다시 떨어졌다. 

이로 인해 크게 낙심하던 차에 《권세양언(勸世良言)》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는데, 이 책은 영국 선교사 모리슨(R. Morrison)의 조수이자 최초의 중국인 목사로 알려진 양아발(梁亞發)이 중국인 전도를 목적으로 만든 소책자였다.

1837년에 또 원시 시험에 실패한 후 병에 걸려 약 40일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홍슈취안은 기이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홍슈취안은 하늘로 올라가 상제(上帝)를 만나고 상제로부터 세상을 구하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이 경험은 그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홍슈취안은 1843년 과거시험에 실패한 이후 더 이상 과거시험에 미련을 두지 않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목적으로 배상제회를 조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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