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달려 나와 무릎을 꿇었다. 예수님께 영생의 길을 물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같은 사건을 기록한 마가복음 10장, 마태복음 19장과 누가복음 18장을 종합해 보면 이 사람은 젊은 청년이었고, 부자였고, 또 유대인의 관원이었다. 오늘로 말한다면 성공한 청년 사업가에다가 정계에 진출해서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을 떠올려 볼 수 있겠다. 

거기다가 그는 종교적 신앙심도 깊었다. 오랜 세월을 살아 인생의 단맛 쓴맛 다 보고 나이 지긋해져서, 이제는 죽음이라는 것이 나와 아주 먼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는 정도의 나이가 되어서도 자신의 영혼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자기 우월감과 자신감으로 가득 찰 만도 한 성공한 청년 사업가가 죽음 이후의 세계에 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다만 성경이 말하는 구원 얻는 도에 대해서는 오해가 있었다. 그는 무슨 착한 일을 많이 해야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는다는 전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을 던졌다. 

일단 예수님은 그의 질문의 수준에 맞게, 성경이 명하는 계명을 다 지키라고 대답하셨다(막 10:19). 이에 청년은 자신 있게 어려서부터 계명을 잘 지키고 살았노라고 말했다. 

그러자 예수님은 청년에게 한 가지 부족함을 지적하신다.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막 10: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말 부자 청년이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영생을 얻는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일까?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노라고 자부했었다. 하지만 이 청년은 성경의 가장 중요한 계명은 어기고 산 것 같다. 예수님은 그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알게 하고자 하셨다. 

   모든 계명 중에 가장 첫째 되는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다(막 12:30). 또 십계명 중 첫 계명도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것이다(출 20:3). 

그런데 이 청년은 재물을 포기할 만큼 영생에 관심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였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신은 하나님이 아니라 돈이었던 셈이다. 그에게는 돈이 있고서야 하나님도 있는 것이지, 돈이 없다면 하나님도 없는 것이다. 

 청년은 슬픈 모습으로 예수님을 떠나 돌아가고 말았다.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막 10:22). 

 예수님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의도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다. 

이 부자 청년이 스스로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드러내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강조점은 ‘모든 재산을 포기하고’에 있지 않고 ‘나를 따르라’에 있었다. 지금까지 의지했던 것들을 다 내려놓고서라도 나를 믿고 따를 수 있겠느냐고 도전하셨다. 

예수님이 바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이다(요 14:6).

성경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인간이 자기의 힘과 수양과 선행으로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얼마나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면, 또 선행과 봉사를 하면 천국에 갈 수 있나요?”라고 묻는 것은 잘못이다. 

천국은 몇 점을 얻어야 들어갈 수 있는 대학과는 다르다.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값을 치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과 우리는 화목하게 될 때 새로운 생명의 관계를 갖게 된다.

기독교 신앙은 그래서 자신이 지금까지 의지해왔던 모든 종교적 선행조차도 내려놓고 예수님은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고 말한다. 부자 청년은 이 문제 앞에 실패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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