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어머니의 졸업식에 다녀왔다. 78세의 어머니가 졸업하신 학교는 ‘전북특별자치도립여성중고등학교’이다. 어디서 끊어 읽어야 할지 망설여지는 학교 이름이다. 제때 공부를 하지 못한 여성 만학도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학교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학교에 다니지 못하셨다. 가족들이 많았던 그때, 애나 보라면서 초등학교도 보내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나이 20에 결혼하실 때도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하셨다.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장남인 내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돈 번다고 외지에 나가 계시고 어머니 혼자 어린 나를 건사하며 가난을 근근이 버텨내셨다. 이렇게 살 바에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극심한 가난에 시달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우연히 교회에 가셨다. 

교회는 어머니에게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았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혼자 키우다시피 하며 어렵게 사는 우리 모자를 교회는 극진하게 보살펴 주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찬송가, 성경 말씀으로 어머니는 한글도 깨치셨다. 

그리고서 수십 년이 지나는 동안 어머니는 3남 1녀의 자녀들을 키우시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려운 경제 형편에 자녀들을 키우시느라 자신을 돌보고 건사할 엄두를 못 내신 것이다. 그렇게 여유 없이 사시다 자녀들이 장성하고 각자 삶의 자리를 잡아가자 그때 그동안의 못 배운 한을 풀기로 작정하셨다. 

지역 복지관 등에서 제공하는 교육을 받으며 어머니는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치러 합격하셨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해서 중학교 검정고시도 합격하셨다. 하지만 고등학교 검정고시는 힘에 부치셨나 보다. 너무 어려워서 도저히 할 수 없다고 판단하셨다. 그렇다고 포기하신 것이 아니다. 힘들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 3년간 성실하게 다니면 고등학교 졸업을 할 수 있는 길을 택하셨다. 

그리고 그 3년이 어느덧 흘러간 것이다. 3년을 지내는 동안 어머니는 많이 힘들어하셨다. 일반 고등학교와 같이 모든 과목을 이수해야 했고, 과제물도 많았다. 

시험도 일반 고등학교 과정과 같이 치러야 했다. 잘 알지 못하는 영어로 노래를 외워야 하거나, 그림이나 작문, 악기 연주 등으로 수행평가도 치렀다. 짐작하건대 성적도 아주 낮았을 것이다. 다만 어머니는 실력의 부족함을 성실한 출석으로 메꾸셨다.

자녀 중에는 어머니를 뵐 때마다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왜 계속 학교에 다니시느냐고, 스트레스받지 말고 그만두시라고 학교 가는 것을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알았다. 힘이 들더라도, 스트레스받더라도 못 배운 한을 풀려는 어머니의 열심을 꺾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결국은 해내셨다. 힘들었지만 시작하고 버티면서 살다 보니 어느덧 그 끝에 도달했다. 어머니께 꽃다발을 드리며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다고 찬사를 드렸다. 

시간이 일을 한다는 말이 있다. 이미 늦었다거나,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도전을 시작하면, 그리고 묵묵히 버티다 보면 언젠가 그 끝은 오는 것이다. 그 나이에 고등학교 졸업장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졸업장이 무슨 현실적인 도움을 줄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그동안 배우지 못한 설움을 털어내고 갖는, 무엇을 해냈다는 뿌듯한 보람과 자신감은 그 결과의 효능감과 별개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

나와 내 동생들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을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어떠한 마음이었을지를 생각해 본 적 있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아니 어머니의 어린 시절 또래들이 학교 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부러우셨을까! 

그런 자신의 못 배운 설움 때문에 자녀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가르치셨을 것이다. 그런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직도 새해 인사가 전혀 낯설지 않게 하는 설 명절이 왔다. 늦은 때는 없다. 시간이 일한다. 지금은 무엇인가 새로 도전하기 좋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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