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부자에게 자기 재산을 도맡아서 관리해주는 청지기가 있었다. 그런데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제 마음대로 한다는 소문이 들린다. 주인은 청지기를 불러서 추궁했다. 대부분 사실로 드러났고, 결국 주인은 청지기를 해고하려고 했다. 장부를 정리하고 나가라는 것이다. 

청지기는 과거에 행한 잘못으로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했다. 그는 생각했다.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눅 16:3). 그는 이 위기의 순간에 지금 나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무엇을 하고 싶어 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지에 대해서 명료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제 끝이로구나. 내가 이 직책에서 해고당하기 전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청지기는 자기가 할 일을 알았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눅 16:4). 이런 위기의 상황에 직면해 보니까 모든 것이 명료하게 되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그리고 그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급하게 불러 모아 그 진 빚을 감액해 주었다. 주인이 자기에게 위임해준 권한이 아직은 유효하기에, 계약서에 주인의 도장을 찍어서 채무자들의 빚을 감액해 준 것이다. 청지기는 내가 이들에게 이런 은덕을 베풀었으니 내가 여기서 쫓겨나더라도 신세를 진만큼 뭐라도 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다.

결국 주인도 이 사실을 알았다. 그런데 주인은 화를 내기보다 그 청지기의 지혜를 칭찬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위기의 순간에 자기 앞가림 하나는 아주 잘했다고 하는, 불의한 청지기의 약삭빠른 행동, 머리를 굴려 자기의 앞날을 도모한 것을 칭찬한 것이다. 

청지기는 과거에 자기가 잘못한 것으로 인해 지금 삶에 어려움이 찾아왔는데, 지금 그런 상황에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침착하게 구분해 내었다. 후회를 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았다. 

내가 움켜잡았지만 결국 내 손에서부터 모래처럼 빠져나가 버린 것과, 아직도 여전히 내 손에 남아있는 것을 명료하게 구분해 내었다. 그리고 자기 손에 지금 남아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기의 미래를 대비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다.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청지기는 과거의 모든 것을 털어버린다. 그리고 지금 자기에게 남아있는 것에 집중한다. 과거의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여전히 자기가 가진 것에 주목해서 집중력을 발휘한다. 그리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것으로 내일의 생을 열어간다. 행위는 악하지만, 주인은 바로 이점을 칭찬한 것이다. “야 이것 보통 아니네” 

신앙인 중에는 일이나 공부는 적당히 해놓고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주시겠지, 노력은 적당히 하고 내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니 하나님이 도와주실 거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은 요행수에 가깝고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는 행위다. 무엇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일인지에 대한 방향감각을 잃지 않으면서 그렇게 살기 위한 방편들을 지혜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 

내 손에서 이미 벗어난 것을 아쉬워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아직 내 손에 쥐여주신 것에 집중해야 한다. 이미 지나간 것에 연연해하거나, 과거 인생 속에 흘러가 버린 것을 바라보며 한탄해 보아야 소용없다.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 과연 내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하는 깨달음이다. 2024년을 시작하면서 과거에 연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자원과 기회들을 잘 활용해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한다. 

2024년 새해에는 내가 할 일을 잘 알고 집중하여 좋은 열매 맺기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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