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를 대표할만한 기억에 나는 유행어가 둘 있다. 그중 하나는 “나 되게 신나!”라는 말이다. 작년 말부터 올 초에 이르기까지 큰 반향을 일으켰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대사다. 유행어 대사 한 마디에 드라마 속 주인공 문동은의 복수극이 축약되어 있다. 

또 하나의 유행어는 “I am 신뢰”다. 올 하반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으로,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 남현희의 연인으로 알려진 전청조의 사기극에 등장하는 말이다. 이 말은 참 많은 기업과 매체의 패러디를 양산해 냈다. “나 되게 신나”든, “I am 신뢰”든 건강한 사회상을 반영한 것은 아니다.

2023년에 유행했던 이런 말과는 달리 올해 국민에게는 그리 ‘신나는’ 일도 없었고, 그렇다고 ‘신뢰’할만한 무엇인가를 발견하지도 못했다. 공정과 상식은 물 건너갔고, 예측 가능성을 뛰어넘는 여러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벌어졌다. 불과 몇 주 전 우리는 심하게 널뛰기하는 날씨를 경험했었다. 갑자기 한겨울에 영상 20도를 넘나들었다. 반 팔을 입고 다니는 이들을 보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폭우가 내렸다. 겨울 장마라 할 정도로 며칠에 걸쳐 큰 비가 내렸다. 그러다 돌연 겨울 한파가 찾아왔다. 영하 15도를 넘나드는 한파로 밖에 주차해둔 차 문이 얼어서 잘 열리지 않았다. 강추위를 우습게 여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서울에 갔다가 추위에 떨어야 했다. 불과 열흘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기상전문가들조차 우리의 경험치를 비웃는 요즘 날씨를 도대체 잘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 한 겨울다운 강추위가 왔지만, 또 무슨 일이 생길지 장담하기 어렵다.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어디 날씨뿐이겠는가? 요즘 우리나라 정치나 경제나 사회 할 것 없이 불확실성의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다. 정치권에서도 예전에 잘 볼 수 없었던 희한한 일들이 벌어진다. 시스템이 붕괴되고 무질서가 자리 잡았다. ‘후안무치’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거짓말을 해대는 정권과 여야 정치인들을 국민들은 그저 바라만 볼 뿐이다.

내년 경제에 대한 전망도 좋지 않다. 제1군에 속한 건설사들의 부도설 등 건설업계에 유동성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자 부랴부랴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고 한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그저 좋게만 볼 수 없는 것은 그만큼 내년의 경기가 불투명하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저출산 문제는 다른 나라들이 걱정해주는 지경이다. 점차 인구소멸로 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인도의 평균 연령 28세에 비해 우리나라 평균 연령이 44.4세이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노령화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고대의 국가들에서는 ‘치수’(治水)를 잘해야 성공한 통치자로 인정받았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선 인구정책을 잘 펼쳐 출산율이 높아지면 그야말로 훌륭한 통치자로 인정받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점점 이전에 경험해 보지 않았던 새로운 상황을 만나는 것이 일상화되는 분위기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예측 가능한 시대가 아니라 예측 밖의 상황에 적응해 가야 하는 시대를 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동요 “기찻길 옆 오막살이”의 가사처럼 아직은, “기차 소리 요란해도” 아기는 잘 자라고, 옥수수는 잘도 큰다. 종말의 그날이 오기까지는 노아의 무지개 언약처럼 삶의 기본 토대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진 않을 것이다. “(창 8:22)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위기의식과 평상의식 사이 어딘가에서 우리는 살아야 한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우리 각자에게 2023년은 다양한 기억과 의미로 남을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해를 선물처럼 받을 마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미래의 일이야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 없는 일이지만, 다시 한번 시간의 매듭을 짓자. 과거를 묻고 새롭게 출발해보자. 어찌 알겠는가? 2024년이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복과 은혜의 해로 남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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