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 영업을 하고 있는 건물과 그 부지는 원래 갑이라는 사람의 소유였습니다. 그런데 갑이 사망하자 갑의 상속인이었던 A와 B가 상속재산을 나누기로 하여 건물은 A가, 부지는 B가 갖기로 하여 각자의 명의로 등기를 하였습니다. 그 후 B는 부지를 을에게 매도하였고, A는 건물을 병에게 매도하였으며, 병으로부터 정이 건물을 인수하였습니다. 정은 건물 소유자인 을로부터 부지를 매수할 생각으로 건물을 인수하였으나 을은 땅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정에게 팔기를 거부하고 오히려 정에게 건물을 철거하여 달라고 합니다. 정은 건물을 철거하여 주어야 하나요?

[ 해 설 ] 건물을 철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을은 대지의 소유자로서 지상의 건물에 대하여 철거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민법 제214조). 그러나 건물의 소유자가 부지를 점유할 정당한 권리가 있다면 이러한 대지 소유자의 요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대지를 점유할 정당한 권리라면 지상권(地上權 : 타인의 토지에 건물 기타 공작물이나 수목을 소유하기 위하여 그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을 말합니다)이나 전세권, 임차권 등을 들 수 있겠으나, 귀하께서는 토지소유자와 이러한 권리를 설정하는 계약을 하지 아니하였으므로 토지를 사용할 권리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은 “토지와 건물이 동일한 소유자에게 속하였다가, 건물 또는 토지가 매매 기타 원인으로 인하여 양자의 소유자가 다르게 된 때에는 당사자 사이에 그 건물을 철거하기로 하는 합의가 있었다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건물소유자는 토지소유자에 대하여 그 건물을 위한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하게 된다(87다카279 판결)”고 합니다.

사례의 경우도 ① 토지와 건물은 갑의 소유였다가, ② 상속재산의 분할협의(그 본질은 매매와 다름없습니다)에 의하여 양자의 소유자가 달라졌으며, ③ A와 B 사이에 건물을 철거하기로 하는 합의도 없었다고 판단되므로, A는 판례에서 말하는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하였다고 할 것입니다(주의할 것은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하는 자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자가 달라지게 될 시점의 건물소유자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은 그 요건이 갖추어지게 되면 등기없이 당연히 취득하게 되는 물권이므로 A는 특별히 지상권설정등기를 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지상권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상권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할 때에는 등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민법 제187조 단서). 사례로 돌아와서 A가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한 것은 분명하지만, A와 병을 거쳐 건물을 양수한 정은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을 취득하지 못합니다. 정은 물론 건물을 매수할 때 병을 거쳐 A의 대지사용권(법정지상권)도 당연히 인수하려는 의사가 있었겠지만 등기를 넘겨받지 못하였기 때문에 아직 법정지상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경우에 과연 을은 정에게 건물의 철거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우리 대법원은 이를 부정합니다. 그 이유는 “법정지상권을 가진 건물소유자로부터 건물을 양수하면서 지상권까지 양도받기로 한 사람에 대하여 대지소유자가 소유권에 기하여 건물철거 및 대지의 인도를 구하는 것은 지상권의 부담을 용인하고 그 설정등기절차를 이행할 의무있는 자가 그 권리자를 상대로 한 청구라 할 것이어서 신의성실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87다카279 판결)”는 것입니다. 이것은 건물이 전전양도된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을은 정에게 건물의 철거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참고로 관습법상의 법정지상권이라고 하여 무료로 타인의 토지를 사용하는 권리는 아닙니다. 따라서 등기를 갖추기 이전에는 부당이득으로, 등기를 갖춘 이후에는 대지소유자와 협의하여서 정한 지료를 대지사용료로 지급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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