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성탄절의 소식은 제일 먼저 들판에서 양을 돌보던 목자들에게 알려졌다. 그들이 들은 성탄 소식은 모든 인류에게 미칠 가장 기쁜 소식이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눅 2:10-11).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아주 비상한 사건이었다. 만물의 창조주가 인간이 되시는 일, 전능한 절대자가 스스로를 비우고 제한 속에 들어온다는 것은 신비에 속한 일이요, 인간의 지혜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파격적인 사건이었다. 

구유에 누이신 아기는 하나의 표적(sign)이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눅 2:12). 목자들에게 구유에 뉘어놓은 아기가 표적이 된다는 것은 보통 아기들과 달리 구유에 누워 있으니 쉽고도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 중요한 표적이다. 구주이신 아기 예수님이 궁전의 안락한 침대는커녕 보통 아기들이 집에서 태어나는 것과는 달리, 짐승들에게 먹일 여물을 놓는 먹이통에 아기가 놓여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다는 표적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신을 의로운 자로 자처하는 자들이 아니라 비참한 자들,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들, 내 인생에 무슨 소망이 있을까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자들을 위해 오셨다. 영적인 가난함 속에 울부짖는 자들에게 기쁨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로 목자들을 택한 것이다.

이들은 아기 예수가 계신 곳까지 달려가서 만나게 된다. 목자들은 아기 예수를 접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 2:20). 그 이후 그들의 고단한 생활이 해결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아기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그들의 신분이 바뀌거나, 부자가 되었다는 기록도 없다. 그런데 그들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고 소망으로 가득 찼다. 

관심과 눈길을 전혀 끌지 못하는 그 아이가 실은 온 세상을 구원하는 구주시며, 바로 옛 선지자들이 오시리라고 예언했던 그리스도였기 때문이다. 사람의 존재 깊숙한 곳에 숨겨진 근본적인 불안이 해결되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된다. 

성탄의 소식이 제일 먼저 목자에게 들려졌다는 것은 또 다른 중요한 사인이다. 예수님께서 양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돌아보실 목자로 오신 것을 상징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선한 목자의 사역을 위해 오셨다. 이것은 이미 구약에 예언되었다. “그는 목자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진정한 메시아는 자신의 백성들을 목자처럼 돌봐줄 것이다. 

목자의 임무는 일반적으로 들짐승으로부터 양들을 보호하고 때를 따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한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양들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셨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요 10:11).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은 일반 아이의 출생과 다르다. 죄인을 대신하여 죽기 위해 태어나셨기 때문이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예수님은 대속적 죽음을 위해 오신 분이다. 

성탄절이 다가왔다. 연말 분위기에 젖어 성탄절을 그저 선물 교환과, 먹고 마시며 즐기는 시간으로만 소비할 것이 아니라, 성탄절의 진정한 의미를 한 번쯤 되새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돌아볼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성탄절의 의미를 생각하며 모두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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