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500여 년 전, 애굽(이집트)에서 노예생활로 고통을 받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빠져나오게 된다. 이것을 ‘출애굽’이라 한다. 그런데 애굽을 떠난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곧바로 올라가지 못한다.

그들은 40년간 광야에서 방황하면서 출애굽 1세대들은 대부분 광야에서 죽는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두 번째 세대가 주축이 되어 40년 만에 가나안 땅을 향하여 전진하게 되었다. 가나안을 목전에 두고 가나안으로 곧바로 갈 수 있는 지름길에 위치한 에돔지역 사람들에게 그들의 땅을 통과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단칼에 거절을 당한다(민20:14ff). 

이스라엘 백성은 결국 에돔족속의 땅을 관통하지 못하고 빙 둘러서 가야 했다. 그들은 마음이 상하여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뱉어내기 시작한다. 그들의 원망 소리를 들어보자.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민 21:5). 

백성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다. 그들의 원망은 길에 대한 문제가 아니고 이 길을 가게 하신 하나님의 목적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그리고 음식문제를 걸고 넘어진다.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사실 길 때문에 화가 난 것인데 이들은 이렇게 고약한 트집을 잡았다. 그들이 가나안을 떠난 이유는 단지 강제노역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가서 하나님의 복된 다스림 가운데서 거룩한 문화를 세우고, 모든 민족에게 복을 전하는 제사장 나라가 되어야 할 사명을 하나님께 받은 민족이었다.

그들은 이 세상 존재해 본 적이 없는 참으로 거룩하고 순결한 나라, 하나님의 거룩한 문화를 세워가는 사명을 받은 민족이었다. 

그런데 가는 길이 좀 힘들다고, 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서 이 고생을 시키느냐고 불평하는 것이다. 그들이 지금 왜 이 길을 가야만 하는지를 다 잊어버린 것이다. 그저 사니까 사는 것이지 그들이 살아야 할 이유와 영광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학생이 학교 가기 싫다는 말이다. 공부하는 것 힘들다고 왜 자기를 학교에 보내서 이 고생시키느냐고 원망한다. 

의사가 될 사람이 공부하는 것 어렵다고 놀기만 하고, 실습도 적당히 한다면 환자에게 소망을 주는 명의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힘들지만 그 과정을 성실하게 마쳤을 때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고 복 있게 만드는 영광스러움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 광야의 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매일 매일 공급해 주시는 만나를 형편없는 음식이라고 트집을 잡았다. 지금 불평하고 있는 세대들은 광야에서 태어난 세대로서, 만나 이외에는 먹어본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자기가 먹고 있는 만나가 박한 식물인지 어떤지 비교의 대상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선대의 불평을 반성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이어받은 후손들의 모습을 여기서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불평에 대해 불뱀으로 반응하셨다.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좋은 환경과 맛있는 음식과 편안한 휴식이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불뱀이 필요했다. “너희들이 자꾸만 나에게 불평을 하는데 나를 믿고 살든지 아니면 죽든지 알아서 해 보라”는 것이다. 사명은 고사하고 뭐 복잡한 것 다 놔두고 “너희들 나를 믿을래 말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들에게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보면 살도록 하셨다. 그래서 이 불뱀 사건도 그들의 믿음을 돌아보게 하고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다. 그들의 유치한 믿음이라도 보이실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불평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불뱀을 보내셨다. 나의 불평이 배가 불러서, 그래도 살만하니까 하는 불평은 아닐까 돌아보게 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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