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홍 평택시 항만수산과 주무관
김 홍 평택시 항만수산과 주무관

한국인의 삶에 가장 깊이 스며든 물고기는 무엇일까? 다소 이견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많은 사람이 조기, 명태 혹은 멸치를 떠올리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친숙한 물고기임에도 조명치(조기, 명태, 멸치)를 주제로 한 박물관은 쉬이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지난 20일, 평택남부문예회관에서 열린 제14회 평택 박물관 포럼, ‘해양인문학의 현장성과 조명치 특별전의 이해‘는 작은 흥미를 불러일으키며 시작되었다. 

강연이 시작되자 강사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기록은 단순한 사실의 나열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기에 조사자는 단순히 현상을 기록할 뿐 아니라 무대 위에 올라와 그 사람들 속에서 삶의 현장을 보여주는 역할을 맡게 된다고. 그러기 위해 김창일 학예사는 기록자를 넘어 10년이 넘는 세월을 어민들과 함께하며 바닷사람이 되어왔다고 한다. 

이러한 현장의 기록을 생생히 전달하기 위해 그의 박물관은 여타 박물관과 달라졌다. 어시장의 소음과 뱃노래, 어선의 엔진 소리가 스피커를 넘어 들려오고 생선 비린내가 코를 찌르는 박물관. 이러한 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전시실에는 유리를 치워버린 채 약품 처리한 건어물을 펼쳐놓고 황태를 매달아 수산물 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는 유리 한 장 너머 유물을 감상하고 정숙한 분위기의 전시만을 보아왔던 나에게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박물관 직원이 전시 의도를 이해치 못하고 공조기를 틀어서 비린내가 희석되는 일화까지 있었다고 하니 비단 나뿐 아니라 온갖 전시가 이루어지는 국립민속박물관에서조차 흔히 볼 수 있는 전시는 아니었을 것이다. 눈으로 감상하는 전시를 넘어 삶의 현장을 박물관에서 생생히 재현하고자 고민한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왜 조명치인지 알 수 있었다. 밥상에서, 시장에서, 바다 위에서 그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멸치는 젓갈로, 육수로, 양념으로 밥상 위 어디서나 두루 쓰이고 조기와 명태는 예로부터 국, 탕, 찌개, 구이 등은 물론이고 제사상에 올라가는 제물로까지 사용돼 왔다. 문헌에 따르면 조선시대에는 워낙 흔해서 퇴비로까지 썼다고 한다. 그뿐 아니라 노동요에서, 유래담에서, 신앙에서 이 투박한 물고기들은 비단 음식 재료를 넘어 삼면이 바다인 우리 민족의 삶 그 자체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명치가 가득한 우리 바다를 지금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해양 생태계 변화로 인해 연평도 조기 파시(波市)의 떠들썩함은 더 이상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명태는 한때 국내에서 가장 많이 잡히던 물고기였지만 지금은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다. 김창일 강사는 이렇게 해양 생태계의 변화는 우리 밥상을 넘어 우리 문화, 우리 미래와 직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왔다.

2026년에는 평택박물관이 개관한다고 한다. 어떤 모습의 박물관이 될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 삶의 현장이 기록되는 장소를 새로이 맞이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평택박물관이 단순히 골동품의 나열장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명치처럼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며 오랜 시간이 흘러도 평택 시민들의 삶과 문화를 조망할 수 있는 뜻깊은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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