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호사다마(好事多魔)는 중국 고전 소설 <홍루몽>에 나오는 말로, 좋은 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과 역경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순순히 풀리는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또한 그 기쁨에 들떠 있었다. 물론 노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운이란 것도 무시하지 않는다. 주어진 만족한 결과에 한참 취해 있을 때 건강에 이상 적신호가 왔다. 소화기내과와 정형외과 두 군데를 오가며 동시에 검사를 하고 먼저 정형외과 입원과 수술이 진행되었다. 몇 년을 엄지와 검지 중앙 관절 부분에 서리태 콩만큼 커진 혹이 양성이긴 하지만 다행히 악성은 아닌 신경종이란 병명 진단을 받았다.

병원의 수많은 환자들 사이에서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며 진료와 입원을 위한 각종 검사를 하면서 진정한 환자가 되었다. 조금씩 보이던 전조 증상이 빈도가 잦아지면서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어 찾은 병원에서 그저 나약한 사람인 환자란 신분에 되니 살만할 때의 팔팔한 나와 유체이탈 된 기분이 든다.

빠르게 코로나 검사를 하고 면회, 외출, 외박 금지라고 엄포를 놓는 직원의 강경한 직언을 들으며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대에 누웠다. 익숙하지 않은 장소는 무서운 법이다. 눈을 떴을 때 통증과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과, 7층 다인실 병동은 다리와 척추가 고장 난 사람들의 옅은 신음소리 뿐이다. 창밖은 어두워지고 병원 로비도 조용해졌다. 아픈 것은 참 슬픈 일이란 걸 느낌표로 저장한다.

단 하루라도 병원의 환자란 신분이 되면 누구나 외로움에 절규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진 지식, 예술은 그 순간 무용하게 여겨진다. 누구도 그것을 알아주거나 관심 있어 하지 않는다.

오래전 일이다. 지금은 개발로 사라진 병원이다. 급성 충수염 수술로 입원을 했는데 옆에는 치매가 약간 있으신 할머니가 내 옆 병상에 계셨다. 국어교사를 하시고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직하신 분이셨는데 가르치는 일이 몸에 배어 환자인 나를 틈만 나면 가르치려고 하셨다. 하루는 독서 방법의 종류인 다독, 정독, 음독, 묵독에 관해 열성이셨다. 학창시절 배운 내용이긴 하지만 많은 연세에도 저렇게 정확히 기억하며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환자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가볍게도 교양을 쌓고 지식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종류의 책을 많이 읽는 다독을 주로 했던 것 같다.

통증으로 잠도 오지 않고 삭막한 병원이란 분위기에 밤을 새웠다. 환자보다 간호사의 종종 걸음이 더 부산한 병원에서 이틀을 지내면서 수 없는 알고리즘을 따라 떠다니는 회색의 침울 만큼 더 외로운 건 없다고 생각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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