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찬 작가
권혁찬 작가

 

작열하던 유월의 뙤약볕을 이겨내고 굳건하게 뿌리를 지켜온 가을 고들빼기를 채취해 나물로 무쳐 내고 있는 아내 곁에서 한참을 음미 한다

물론 맛을 음미 하고 있지만 입안 깊숙이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아 힘겨웠던 지난여름을 생각하며 왼편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다 뭉클했던 순간들을 기억해 내곤 쓴 침과 함께 한 모금 꿀꺽 삼켜본다.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의 무더위도 지나갔다.

사라지지 않을 듯 했던 아찔한 순간들도 기꺼이 자취를 감추었고 서늘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한 가을 기운이 완연 하다.

마치 입 안 가득 퍼진 쓰디쓴 고들빼기 맛이 달게 느껴지기까지가 세월의 한 고비를 넘는 것 같아 숙연함을 느끼기도 한다.

고통의 순간을 잊고 마구 씹어 대다가는 꿀꺽 삼킬 때의 그 통렬함이 지나온 고비들을 이겨 낼 수 있었던 마음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 해 본다.

추석이 지나고 가을이 익어 가고나면 추수와 더불어 긴 겨울의 휴지기가 다가온다.

준비하고 비축 한 만큼 풍요를 누리며 겨울의 긴긴밤들을 헤아려 보내게 될 것이고 또 다시 찾아올 봄이면 늘 그랬듯이 처음으로 돌아가 씨를 뿌리고 천년을 기획하며 콧노래를 부를 것 이다.

봄이면 달래 냉이 씀바귀 봄나물로 한철을 이겨 내면서도 씀바귀의 쓴 맛을 달게 느끼며 한 계절을 장식하였고, 가을이 오면 농익은 고들빼기나물의 쓴 맛을 달게 씹어가며 세월의 지난 함을 되씹곤 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주기요 참 맛이 아닐까 생각 한다.

온갖 양념으로 버무려 진 고들빼기나물 한 접시를 앞으로 당겨 놓고 야물게 한 입 가득 물고 인생의 쓰디쓴 역정을 씹어 삼키듯 오물거려 본다.

격한 쓴 맛이 넘어가고 나면 혀끝에 남는 달콤함과 입안 깊숙이 느껴지는 알싸한 매운 맛 뒤로 은은하게 느껴지는 고소한 풍미까지 더해 어느새 쓴 맛의 정체를 잃어버리곤 한다.

인생은 쓰나 그 열매는 달다고 했다.

교자는 졸지노요 고자는 낙지모(巧者는 拙之奴요, 苦者는 樂之母)라는 성현의 명언이 있다.

기교나 재주라고 하는 것은 졸렬하고 어리석은 자의 노예가 되는 것이고, 고생과 괴로움은

즐거움의 모태가 되는 것 이란 의미이다.

간교한 재주나 이기적 술수는 결국 어리석은 자 들의 먹이가 되어 상대적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기틀이 되는 것이기에 괴롭고 힘들고 어려운 역경을 극복 해 내는 것 이야말로 쓰디쓴 고들빼기나물을 먹으며 달게 느끼게 되는 것처럼 고생 뒤에 느끼는 행복의 맛이 아닐 수 없다.

살아오면서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다면 그것이 곳 참된 삶의 과정이었다는 증거이다.

전율하도록 쓰디쓴 지난 기억들을 양념으로 버무려 내 알싸한 맛을 담은 가을 고들빼기나물 한 접시로 저녁상을 장식한다.

한 점씩 넘어갈 때마다 무어 그리 쓰라렸던 날들이 많았는지 달콤함이 입안 가득함을 느낀다. 뼛속까지 배어드는 쌉쌀함이 씁쓸했던 순간들을 모두 녹여 주고 있다.

뱃속이 온통 달콤함으로 요동을 치고 있는 듯 입가엔 만연의 미소가 돌며 진실로 쓰디썼던 기억을 더듬듯 입술 언저리를 긴 혀로 쓰윽 둘러 핥아 본다.

참 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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