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인 목사
김학인 목사

 

큰 빚을 지고 고통받는 사람이 있었다. 고리 사채까지 썼다가 이제는 교묘한 불법 추심(不法 推尋)으로 생명의 위협받는 받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어떤 부자가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빚을 대신 갚아 주었다. 심지어 다 변제되었음에도 사채업자로부터 당할 수 있는 부당한 일로 고통당하지 않도록 전문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게 조치해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빚을 청산받은 사람은 이제 마이너스의 삶에서 0으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제대로 살아가려면 0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플러스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도와준 사람이 부채를 대신 갚아준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에게 사업자금을 마련해 주고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붙여주어 온전히 일어서서 플러스의 인생을 살도록 계속해서 도와준다고 하면 어떤가? 이보다 더 고마운 일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신 것은 단지 죄인을 불쌍히 여겨서 과거의 죗값을 청산해 주신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해줄 일은 다 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는 이제 네가 알아서 하거라”하고 버려두지 않으신다. 모든 생활의 전문가인 보혜사 성령을 곁에 보내셔서 그 도움을 받아 플러스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신다.

성경은 구원을 이렇게 설명한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8-10).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신자는 거듭난 인생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살도록 부르심 받는다. 마이너스 적자 인생에서 0을 넘어서고, 이제는 흑자 인생을 살게 하시는 것이다. 죄를 안 짓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자로 세워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은 신자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날, 즉 종말의 때까지 지켜주시고 완성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하신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이것은 궁극적으로는 구원의 시작과 완성을 의미하지만, 그 이외에도 그 안에 많은 것을 포함하고 있다. 복음으로 인해 삶이 변화를 받아 모든 봉사와 헌신의 생활들을 살도록 도우신다.

하나님은 신자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분이다. 그들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 그래서 신자는 낙심하지 않고 힘있게 살 이유를 가진다. 개인적인 신앙적 성숙과 교회의 복음 사역의 완성은 연약하고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무지, 무식한 사람들의 손에 있지 않다.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의 손에 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도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러면 인간의 노력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앞에 얼마나 우리가 고집을 부리지 않고 순종하느냐가 많이 둘러서 목적지에 도착하느냐, 순탄하게 가느냐 하는 문제에 영향을 준다.

하나님은 사람을 기계처럼 강제로 다루시지 않고 자발적인 순종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기를 바라신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롬 6:13).

신자들은 자신 안에 선한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리는 순종의 삶을 살도록 요청받고 있다. 마이너스 인생이거나, 겨우 마이너스를 면한 0의 인생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흑자 인생을 살게 하는 ‘하나님의 열심’이 ‘신자의 순종’을 사용하여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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