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 작가
최희정 작가

 

나의 창은 동쪽으로 열려 있어 달과 별을 바로 마주쳐 볼 수 있다.

새벽 4시에는 밤하늘의 별들이 지난 여름보다 산뜻하게 뜬다. 뜨거운 계절을 견디어 건너온 조금은 시큰해진 몸 위에 뜬 하늘의 빛이다.

추석 지나 그믐달과 두뼘 거리로 따라다니는 금성, 샛별! 그 선명한 빛과 위치가 놀라워 눈이 환해진다.

발음도 서늘한 시월이다. 소슬바람이 분다. 들판에는 말라 부서지는 풀꽃들의 냄새, 구절초 하얀 꽃무더기에서 나오는 쌉사래한 향기, 꽃밭엔 진보라 마편초가 피어 가을만큼 고즈넉하다.

처음 시를 만진 것이 시월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교실, 국어수업 시간이었다. 우리 반으로 전학 온 내 친구는 맨 뒤에 앉았고, 나는 앞자리였다.

수업시간 중에 노트를 찢어 쓴 시를 조용히 친구들의 등과 등을 두드려 나에게 배달된 시편은 김남조의 <너를 위하여>였다.

또박 또박 종이 위엔 진주 구슬을 꿴 듯한 아름다운 언어들, 내면의 창조와 상상력을 그때 접하였다.

나의 밤 기도는 길고 한가지 말만 되풀이한다

가만히 눈을 뜨는 건 잊을 수 없을 만치의 축원

쓸쓸히 검은 머리 풀고 누워도 이적지 못 가져본 너그러운 사랑

너를 위하여 나 살거니 소중한 건 무엇이나 너에게 주마

.....

오직 너를 위하여 모든 것에 이름이 있고 기쁨이 있단다 나의 사람아

명랑했던 감탄사를 일 삼던 소녀들은 세월과 함께 시월이 되었다. 옛이야기가 시냇가 물소리처럼 들리는 가을의 속삭임들, 지금은 유유자적 음악처럼 듣는다.

카이오와 인디언 부족은 시월의 이름을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이라 부른다.

쉼표 같은 시간에 나는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윤기나게 머리를 감고, 무슨 연한 미소를 평화를 맞이하러 나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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