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
박기철 교수

 

며칠 후면 우리나라의 최대 명절의 하나인 추석이 다가온다. 재래시장과 백화점에는 추석 준비에 여념이 없다. 친척과 친구, 또 인사할 곳을 생각하면서 어떤 선물을 보내야 할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어떤지 복잡하게 지나가는 한 주가 되고 있다.

이미 지난주부터 조상의 묘를 찾아 벌초를 하거나 혹은 봉안하고 모신 곳을 찾아서 인사를 드리는 인파들로 인해 고속도로는 대만원이었다. 물론 진정한 추석의 귀경행렬은 추석이 시작되면 본격화 될 것이다. 서울서 부산까지, 서울서 목포까지 거의 10시간의 정체에도 고향을 찾는 귀소본능을 멈출 수는 없다.

한국의 추석은 온 가족이 다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서로 덕담을 나누고 그리고 또 각자의 고향을 떠나 각자 생활의 터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의 만남을 기대한다. 올해의 추석 연휴는 9월 28일에서 10월 3일 개천절까지 모두 6일이나 쉰다. 직장인들은 모처럼 달콤한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다.

한국에서 가장 큰 명절로 설날과 추석을 손에 꼽는다면 중국은 추석은 포함되지 못하고 설날만 지낸다. 중국에서 설날은 가장 큰 명절이고 무조건 집으로 돌아 가야한다. 이를 위해 역과 터미널에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지금은 고속철로가 발전하면서 기차도 비행기처럼 실명제로 하기 때문에 암표가 사라졌다. 그러나 수년전에는 역 근처에서 암표를 2배 3배씩의 가격으로 표를 사서 고향길에 올랐다.

그리고 중국은 땅이 커서 설날에는 한번 왕복하면 거의 한달이 걸렸기 때문에 대부분의 회사들이 한 달씩 쉬었고, 어떤 직원들은 고향에 간 김에 아예 돌아오지 않아서 공장들이 직원을 구하는데 애를 먹기도 했다.

중국에서 설날은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에 추석은 공휴일로 지정되지도 않았다. 다만 그 다음 주에 연결되는 중국 국경일에 약 1주일간의 휴가가 주어진다. 중국의 추석이 이렇게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것은 추석날 조상들에 대한 차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서로 월병을 주고받는 정도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에서 보면 추석이 이전에는 상당히 중요한 절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추석을 가을날의 중간이라 해서 중추절이라고 부른다. 중국의 역사 기록을 보면 중추절은 굉장히 오래된 민간의 행사중 하나였다. 고대 중국의 일부 지방에서는 ‘달의 신(月神)’에게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국과 중국이 모두 같은 날을 추석과 중추절이라는 이름으로 지내는데 한국에서는 지금도 차례를 지내는 풍습이 남아있는 반면, 중국에서는 그 풍습이 사라졌다. 그리고 제사없이 그냥 달을 감상하거나 다양한 축제 활동으로 변화되어 내려오고 있다.

처음 중국의 기록에 등장하는 중추절은 한나라때 부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때는 제사를 지낸 것 같다. 다만 중국의 남쪽 지역에서 시작하였고 당시 북쪽에는 아직 중추절을 지내지 않고 있었다.

중국에서 중추절이 본격화된 것은 당나라 시기라고 한다. 이때부터 북쪽 지역까지 중추절이 보급되었다. 당 태종때에는 당시 수도였던 장안에서 보름달을 구경하러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고 많은 시인들이 달을 주제로 글을 쓰기도 했다.

우리는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라는 노래도 있어 그 가락 속에서 우리 뿐만 아니라 중국인도 중추절을 즐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음력 8월의 많은 행사들이 달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보름달과 같이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풀리라는 의미로 보름달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월병’을 서로 주고 받는다. 가끔 중국 관련 뉴스에서 월병 통안에 엄청난 돈을 집어넣거나 또 다른 의미의 선물을 주다가 부정부패로 처벌받았다는 내용이 나오기도 한다.

한국의 추석과 중국의 중추절이 같은 날, 같은 보름달을 즐기지만 그 지내는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조상을 기리고 온 가족이 모이는 중요한 날짜이지만 중국은 보름달을 감상하고 자신의 소원을 비는 정도에 불과하다. 그래서 추석과 중추는 같지만 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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