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석흥 논설위원
문석흥 논설위원

 

요즘 텔레비전에도 나오지만 나나인, 나나 랜드라 해서 깊은 산 속에서 혼자서 자연과 더불어 자기만의 의지에 따라 남의 간섭 없이 눈치 안 보며 하고 싶은 일 이룩하며 홀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농촌이건, 어촌이건, 도시이건 모여서 살고 있다. 이렇게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구성체를 사회라 한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다. 이는 사람과의 훌륭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함께 어울림의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모여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의 모습을 사회생활이라 한다. 각기 출신과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사회생활을 함에 있어서는 우선 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 그래서 법이 존재하며 이 법을 다스리는 기관이 있다. 그러나 이 복잡하게 구성된 사회 속에서 어찌 법만이 능사일 수는 없다. 법을 어겨 수사를 받고 처벌을 받고 징역형을 받고 몇 년, 몇 십 년, 종신형까지 받는 경우도 있지 않는가. 그러는 데도 여전히 범법자는 생겨나고 있다. 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을 사기하여 금전적 손실을 입혀 마음을 상하게 하고 삶의 의욕마저 잃게 하는 신종 보이스피싱, 큰 이익을 보장한다는 그렇듯 한 사업을 내 걸고 투자를 권유하고 처음에는 약속대로 이익을 보장해 주고는 결국 다수의 투자자들의 거액의 투자 금을 횡령하고 자취를 감추는 사기범들, 그 밖에도 다양한 수법의 사기 행각들을 뉴스를 통해 자주 보고 듣는다.

흔히 누가 봐도 선하고 다정다감하며 남에게 좋은 일만 하는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한다. 세상은 다 이런 사람들만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램 일 뿐,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럴 수는 없다. 사람마다 타고난 품성, 자라난 환경, 교육수준이 다를뿐더러 현재의 직업이나 처한 위치에 따라서도 다름을 본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면서도 그런 대로 질서가 유지되고 안심하고 살아가는 데는 법 규정이외에도 사람마다 지니고 있는 양심과 도덕심이 있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동안 남에게 도움은 못 줄망정 손해나 고통은 주지 않아가며 사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꼭 재산상의 피해가 아니라도 직 간접적으로 정신적 신체적 피해가 없도록 배려해 감이 필요할 것 같다. 요즘 흔히 보고 느낄 수 있는 한 예로, 남들이 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 아니 깊은 잠에 든 시간에 오토바이 특유의 심한 굉음을 고의적으로 발생시켜 자기만의 쾌감을 한껏 느끼며 텅 빈 도로를 고속으로 질주하는 운전자들, 제발 잠자리에 든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있어 주었으면 한다.

돈 안 들이고도 남에게 피해 안 끼치고 배려해 가며 사는 길, 노력하면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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