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인 목사
김학인 목사

 

사람의 걸음걸이를 나타내는 말이 여럿 있다. ‘아장아장’은 걸음마를 뗀 아이가 느리게 이리저리 걷는 모양을 말한다. ‘사뿐사뿐’이 있다. 소리가 나지 않을 정도로 매우 가볍게 발을 내디디며 걷는 모양새다.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새색시의 고운 걸음을 떠올리게 한다.

‘또박또박’은 가볍고 분명한 발걸음 소리를 내며 일정한 속도로 걷는 소리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의 구두 소리를 연상시킨다. 조금 더 강한 소리인 ‘뚜벅뚜벅’은 남성의 구둣발 소리에 가깝다. 아니 왜 여자는 ‘또박또박’이고 남자는 ‘뚜벅뚜벅’이지? 그것은 고정관념이고 성차별적인 생각이라고 꾸짖지는 마시라. 예를 들어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뿐이니.

‘성큼성큼’은 발이나 다리를 잇달아 높이 들어 크게 걸음을 내딛는 모양이다. 성큼성큼에는 힘이 느껴진다. ‘저벅저벅’이라는 말도 있다. 발을 묵직하고 크게 내디디며 자꾸 걷는 소리이다. 군대가 행진할 때 내는 소리나, 분명한 목적을 향해서 망설임 없이 힘차게 내딛는 소리이다.

‘터벅터벅’은 어떠한가? “힘없이 다리를 조금씩 떼며 무겁게 느릿느릿 걷는 모양”을 말한다. ‘터벅터벅’은 좀 지쳐있고 힘 빠진 느낌을 준다. 머나먼 길 정처 없이 걸어가는 나그네의 걸음이라 할까.

일정한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는 발걸음을 ‘행보’(行步)라 한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고 그것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인생 행보’라 부른다. 그럼 나의 인생 행보를 발걸음 소리로 표현한다면 과연 어떤 소리를 내고 있을까?

다윗은 사울을 이어서 이스라엘의 제2대 왕위에 올랐다. 왕위에 오른 그의 인생 행보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였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삼하 5:10). “점점 강성하여 갔다”로 번역된 구절을 원래 히브리 문장(ילך דוד חלוך וגדול)을 직역한다면, “다윗이 걸어갔다 크게 걸었다” 정도이다. 어떻게 말하면 다윗이 ‘성큼성큼’ 혹은 ‘저벅저벅’ 목표를 향해 힘있게 매진해가는, 점점 더 큰 걸음으로 걸어갔다는 말이다. 이것이 점점 강성하여갔다는 말에 담긴 의미다. 단순히 그가 이전보다도 더 큰 권력을 가졌다거나 더 성공하고 출세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기독교 작가 유진 피터슨은 다윗이 더 큰 걸음과 더 넓은 관대함으로 전진해 갔다는 의미라고 옳게 해석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 인격적으로 성숙함이 없는 사람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 그가 속한 공동체는 고통을 받는다. 공동체에게 그런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것은 재앙에 가깝다.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에 걸맞는 성숙함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다윗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여덟 번째 막내아들이었다. 십 대 후반에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차기 왕이 되리라는 신명(神命)을 받았지만, 실제가 되기까지는 20년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한때는 적국의 우두머리 장수인 거인 골리앗을 처단하여 백성과 왕의 신임을 받았으나, 얼마 가지 않아 왕의 견제와 미움을 받아 10여 년간 도망자 신세로 살아야 했다.

그를 미워하던 사울왕이 죽자 신명을 따라 그가 차기 왕이 되어야 했으나, 다윗의 출신인 유다 지파 외에는 이를 거부하고 사울왕의 아들을 왕으로 세우고 다윗을 대적하였다. 다윗은 단지 한 지파의 왕으로서 7년 반 동안을 다스리며 더 기다려야 했다. 결국 사울왕의 아들이 죽자 그제서야 어쩔 수 없이 다윗을 찾아와 자신들도 다스려주기를 구하며 마지못해 다윗을 임금으로 받아들였다(삼하 5장).

그럼에도 다윗은 그들을 포용하였다. 기존 7년 반 동안 수도의 역할을 했던 헤브론 땅을 버리고, 보다 북쪽에 위치한 시온성 곧 예루살렘을 새 수도로 정했다. 그것은 다윗이 다른 지파들을 포용하고 배려한 것이다. 다윗은 성을 정비한 후 곧바로 ‘하나님의 법궤’를 성으로 모셔 온다. 이것은 진정한 왕이 하나님이시라는 다윗의 신앙고백과 같다. 모든 힘의 근원이 되신 만군의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셨던 다윗은 그렇게 보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인생 행보를 걸어 나갔다. 목적 있는 삶을 발견한 사람의 인생 행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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