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희 작가
유영희 작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기를 비는 일’이 기원의 두 번째 뜻이다.

이제 예순을 넘긴 그의 8개월 병원살이가 끝났다. 코로나로 병동 출입이 제한적이던 시간을 보내고, 위험한 병세를 이기고 재활을 하면서 고독한 시간을 이겨낸 승리의 시간이라 볼 수 있다. 병원의 지루하고 불확실한 환경에서 삶의 의지를 굳건히 간직하며 산다는 것은 보통 일은 아니다. 거기에는 두 아들이 말없이 행한 아버지에 대한 근본적 사랑과 애정이 있었다.

무더위가 혹독하다. 태양빛이 끈끈하게 습도의 시간 안에 스며들어 생존을 힘겹게 한다. 그건 단지 사람의 일만 아니다. 세상의 극과 극에서 팔려와 우리에 갇힌 동물들과 길고양이, 물이 바짝 마른 웅덩이 물고기와 먹이를 구하기 어려운 모든 생명들이 가진 극한 숙명이다.

며칠 전 안성 죽산면에서 용설리 주민을 만났다. 그곳 꼭대기에 위치한 숲속 빌리지 펜션으로 모임을 왔는데 마을입구, 집 앞 나무아래에 앉은 구부정한 노령의 할머니께 인사를 드렸다. 낯선 사람임에도 안심이 되셨는지 할머니 생의 역사가 술술 읊어졌다.

“내 나가(나이) 시방 93살인데 20살에 시집을 오니 8남매 맏며느리였어, 속아서 시집왔지만 어쩌겠어. 사는 동안 시동상도 죽고 아들도 죽고, 그나마 손자는 지 애비 닮아 똑똑해서 일본 법대서 공부해.”라고 말씀 하시면서 “저 담장 좀 봐, 다 허물어지게 생겼지만 지금까지 수저하나 잃어버린 거 없어. 여기도 과부 저기도 과부 나도 과부여.”라며 웃는 할머니 말에 우리도 덩달아 웃었다.

유쾌한 할머니 건강 비결을 생각해보니 모진 풍파를 이겨낸 마음에 가득 찬 긍정 마인드가 아닌가 싶다.

마을에 있는 보호수처럼 할머니도 마을 안위를 지키는 나무란 생각이 든다. 93세를 수차례 되뇌이는 할머니께 “할머니 100세 사셔야죠”라고 하니 할머니는 은근 입가 주름이 흔들리도록 환히 웃으시는 거다.

옆에는 온통 벌개미취 연보라색 꽃이 가득하다. 그 꽃의 서식지가 산속이나 들판, 습지, 햇볕이 잘 들고 물기가 많은 곳이라고 했으니 모든 생명 근원의 배경과 같다.

두 아들의 아버지인 그는 오늘로 집 생활 2일차, 비어 있던 집 세간이 얼마나 귀히 여겨질까. 재활운동과 평온한 마음으로 그의 시간이 건강하게 굴러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보호수 같은 할머니도 당신이 담군 장맛처럼 오래도록 수명장수 만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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