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인 목사
김학인 목사

 

그 목사님과의 첫 만남은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처음 부교역자로 부임한 교회의 담임목회자였다. 구체적인 사정도 전혀 알지 못한 채 갔던 그 교회는 오랜 시간에 걸친 내부 갈등으로 상처가 많은 곳이었다.

나름 열정을 다해 맡은 부서를 섬기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오랜 시간 받은 상처들 때문이었는지 교사들이나 청년들은 쉽게 마음을 열어주지 않았다. 비협조적이고 냉랭한 분위기에서 이방인처럼 몇 달을 보내면서 심한 무력감에 시달렸고, 급기야 그곳을 사임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무리 그래도 1년을 채우는 것이 도리라 생각해서 묵묵히 1년의 세월을 견뎌 나갔다.

드디어 1년의 사역 기간 만료를 앞두고 사임 의사를 밝혔다. 이미 다른 곳에 갈 곳도 이야기해둔 터였다. 목사님을 포함한 많은 분이 말렸지만 이미 마음은 굳게 정해졌었다. 그만두는 일정이 정해졌다. 하지만 결국 나는 그곳을 떠나지 못했다.

거리가 멀어 주말이면 교회에서 잠을 잤는데, 주일 아침이 되면 사모님이 사택으로 나를 불러 함께 식사를 하도록 했었다. 그만두기로 정한 그 전 주일에도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사모님이 뒤따라 나오셨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면서 정말 그만두어야겠느냐고, 우리 목사님을 도와주면 안 되겠느냐고 하셨다.

나를 그때를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내가 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더 이상 매몰차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결정을 번복했고, 그리고서 만 4년 동안 그곳에서 사역했다. 그 기간동안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많이 안정되었고 회복과 부흥을 누렸다.

그 후 목사님과의 만남은 내가 전주의 한 기독교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였다. 캠퍼스가 도시 외곽으로 이전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당시 자가용이 없던 나는 학교까지 먼 거리를 시내버스를 갈아타거나 택시를 이용해야 했는데 매우 불편했다. 그 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서울에서 전주까지 내려오셨다. 그리고 타고 왔던 자신의 자가용을 그냥 두고 가셨다.

당시에도 정말 고맙다고 느꼈지만,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목사님은 다른 대체할만한 차량이 없는 상태에서 본인의 차를 나에게 넘기고 간 것이다. 한참을 지나 목사님을 만났는데, 아주 낡은 승합차를 몰고 오셨다. 차가 없어 너무 불편해서 중고차를 하나 장만했다는 것이다. 목사님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과분한 사랑을 나에게 준 것이었다.

그 이후에도 이런저런 일로 가끔은 연락하고 지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왕래하지 못했다. 최근에 다시 만남이 이어졌다. 얼마 전 나의 페이스북을 보고 목사님이 연락하셨다. 서로의 안부를 물었고 지금 내가 섬기는 교회의 사정을 물으셨다. 그리고 혹시 전기공사가 필요하지는 않느냐고 했다. 지금은 파주에서 목회하는데, 해마다 그 교회가 한 교회씩 정해서 전기공사를 도와준다는 것이다. 마침 우리 교회에 전기공사가 필요했고, 목사님은 이번 여름에 교우들과 함께 와서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그 교회의 이름이 괜히 ‘섬기는교회’가 아니었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그분과의 만남에서 참 많은 사랑의 빚을 졌다. 그 목사님은 부족한 후배 목회자인 나를 늘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격려해주었다. 그분과의 만남이 이렇게 오랫동안 이어져 올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관계에서 누리는 행복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태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만남을 통해 열매를 맺고...” 내가 받은 과분한 사랑은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잠 17:17, 전 4:9-10). 하나님은 지금도 소중한 만남을 통해 광야와 같은 인생길조차도 외롭지 않게 걸어가게 하신다. 이제 나도 그 복된 만남을 누군가에게 이어주는 삶을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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