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희정 작가
최희정 작가

 

삼일동안 아이를 돌보는 일과 수박을 키우는 일이 땀과 시간에 뒤엉킨다. 하루해가 넘어가는 저녁세상이 조금씩 조용해지는 걸 뚫어져라 지켜보기도 하고, 바람이 세미하게 부는 날이면 도서관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여섯 살짜리 눈망울 검은 이웃집 소녀가 생긋 웃으며 지나간다. 내 마음에 늘 저만한 아이가 살고 있다. 산골에 살던 여름날, 엄마에게 면박 맞아 아플 때나, 혼자있을 때나 별 이유가 없는 날에도 나는 초등학교 작은 도서실에 있었다.

문을 열면 잠에서 깬 듯한 종이와 활자 냄새가 안기듯 풍긴다. 나무 바닥에는 햇볕 조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꿈틀거리는 것이 좋았다.

책을 열면 별자리 신화 속에 나오는, 지금도 선명히 마음에 자리 잡은 작은 곰 자리와 북극성 이야기가 은하수 따라 신기한 세상으로 옮겨준다.

자라면서 책은 앞장서서 나를 데리고 다닌다. 현실 속 불협화음을 뒤로하고 책과 눈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시간이 있다.

이 땅에 나오자마자 주입된 인습의 도도한 목록들이 서서히 뭉개지면서 시야가 시원해지고 새로운 집이 내 안에서 지어져 가고 있는 듯 뚝딱거린다.

주머니 속에, 거실 벽에, 내방 이불속에서도 말을 걸어온다. 자료실 장서는 쉼터이고 발견의 장소이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눈에 들어오는 책에 손가락이 움직이고, 바닥 위에는 선택된 세상이 기다린다.

과학은 지금 물질에서 마음의 세계로 옮겨가고 있다. 책에는 힘이 있다. 마음의 무너짐과 부활을 거듭하며 밝음 속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더듬더듬 베일을 건드리는 그 무엇이 있다.

오늘은 ‘네빌 고다드’를 읽었다.

“사물을 지금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사물이 존재해야 하는 모습으로

마음 속 시선을 옮기는 능력은

인류가 이룩한 가장 위대한 발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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