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인 목사
김학인 목사

 

서광원이 쓴 <시작하라 그들처럼>(흐름출판)에는 95세 할아버지의 회고록이 나온다. 95세 할아버지가 30년 전 65세의 나이로 은퇴했을 때는 매우 자랑스럽고 당당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이 지난 95세의 생일에 깊은 후회감이 몰려왔다.

그는 퇴직하면서 이제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라는 생각했다. 어떤 목표도 희망도 꿈도 없이 살았다. “이제 살면 얼마나 살겠다고”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 1에 해당하는 30년의 기나긴 세월을 별 의미 없이 그렇게 흘려보낸 것이다. 자신이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별 의미 없이 보내지 않았을 것이라는 회한이다. 이미 늙었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도전도 시도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후회다.

할아버지는 포기했던 어학 공부를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얼마나 살지는 모르지만, 죽을 날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에는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우리는 ‘지금’ 그리고 ‘여기’가 주는 기회를 쉽게 놓치는 경우가 있다.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 혹은 너무 늦어버려서 다양한 이유로 도전도 해보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그래서 놓쳤던 기회들이 얼마나 많은가? 내게 주어진 시간을, 자원을, 기회를 점검해 보고 다시 한번 새롭게 시작할 것은 없는가?

이제 7월이 시작되었다. 올해의 반을 보내고 반이 남았다. 벌써 6개월이 지나가 버린 것을 수도 있고, 아직 6개월이 남은 것일 수도 있다. 잠시나마 지난 시간을 돌아보고 이제 살아갈 날들을 점검하는 하프타임(Half Time)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하프타임은 전반기를 끝내고 후반기를 준비하면서 갖는 짧은 휴식시간이다. 전반전을 끝내고 후반전을 시작하기 전에 휴식 시간을 갖는 운동경기와 같다고나 할까. 한숨 돌리면서 앞으로의 전략을 세워보는 소중한 기회이다.

우리 교회는 지난 주일 하반기의 첫 주일을 맞이하며 교회설립 감사주일로 보냈다. 지난날들의 회고, 주어질 날들에 대한 기대와 소망, 그리고 헌신을 다짐하는 하프타임의 시간이었다.

바쁘게 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연초 계획했던 것들에 대한 중간 점검과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다. 7월 말과 8월 초에 갖는 통상의 여름휴가든지, 아니면 개인적으로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별도의 잠깐 멈춤이 필요한지 모른다. 여름휴가가 재충전하는 진정한 시간이 되지 못하고, 또 다른 분주함과 피곤함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제자들을 재촉하여 한적한 곳에서 쉬게 하신다.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 하시니 이는 오고 가는 사람이 많아 음식 먹을 겨를도 없음이라”(막 6:31). 휴식의 의미도 있지만 자신들을 돌아볼 기회이기도 했다.

예수님 자신도 바쁜 일과 속에서도 성부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따로 한적한 시간과 장소를 확보하셨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 5:16).

이뿐 아니다. 예수님은 아예 제자들을 데리고 팔레스타인의 최북단인 가이사랴 빌립보까지 여행하면서 점검의 시간을 갖게 하셨다. 중간고사라도 치르듯이,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경험한 예수님에 대해 평가해 보라고 하셨다(마태복음 16:13 이하).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방향이 잘못된 속도전은 오히려 돌이키는 데 힘만 더 든다. 운동화 신발 끈이 풀렸을 때 그것을 고쳐매는 시간은 낭비가 아니다. 무디어진 연장을 벼리는 시간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연필 깎기가 있음에도 굳이 칼로 연필을 깎는 것은 마음을 가다듬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95세의 할아버지처럼 중장기의 인생 계획이든, 아니면 올해 남은 6개월에 대한 점검이든 하프타임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으면 좋겠다. 이미 늦었다는 핑계로 남은 시간을 적당히 보내는 어리석음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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