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년 7월 27일은 1950년 6 월 25일,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동족 간의 전쟁이 시작되지 3년 2개월 만에 승부 없이 일단 전쟁을 중지하고 기약 없는 휴전을 조인한 날이다. 그 기약 없는 휴전이 지금까지 계속되어 올해로써 60년 회갑을 맞았다.

아마도 세계 전쟁 역사상 이렇게 긴 휴전상 태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중학교 2학년 때 6.25 전쟁이 났고 고등학교 2학년 때 휴전이 되었다. 그 3년 여 기간은 전쟁 속에 피난 생활의 고통과 전쟁의 참화와 폭격에 의한 죽을 고비도 많이 겪었다.

학교는 휴교 와 개교를 거듭하며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도 없었다. 특히,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북진통일을 주장하며 휴전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따라서 전국은 연일 휴전 결사반대 궐기대회가 계속되었다.

학생들도 수업을 거의 전폐 하다시피 하고 휴전 반대 궐기대 회에 참석하고 시가행진도 했다. 그러나 결국 휴전은 성립되고 말았다. 3년여의 전쟁 중에 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을 보았고 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폐허가 된 삶의 터전에서 살기 위한 고생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전쟁을 계속하면서 북진을 하여 통일을 이룩하는 것도 좋지만,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언제 죽을 줄도 모르고 후방은 후 방대로 폭격으로 인한 파괴와 인명 살상 등으로 그 공포와 절망의 세월에 너무도 고통스러워하던 중 휴전이 되었다는 소식에 모두들 환호했다.

당시 필자도 휴전이 되지 않고 전쟁이 1~2년만 더 계속 되었더라면 국가에 부름을 받고 전선에 나갔을 것이다. 휴전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의 참상을 알리도 없을 것이고 지금이 평화 시대인 것으로 알 것이다. 그 점은 전쟁시대에 살았던 세대들도 그렇게 느끼고 사는 것은 매한가지다.

휴전 이후 지금까지 남북이 계속 무력으로 대치하고 항상 전쟁의 위협을 느끼며 살고 있으면서도 언젠가는 통일이 되겠지 하는 기대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적화통일의 야심을 버리지 않고 수 없이 도발과 위협을 하고 핵무기 까지 만들고 있는 북한과의 평화 통일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작전대로 만주를 폭격하고 우리 이승만 대통령의 주장대로 북진을 했더라면 통일이 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맥아더 장군의 만주 폭격은 원자탄 투하였음이었기에 투르만 미국 대통령이 제지했고 급기야 맥아더 장군을 해임조치 하기에 이르러 사실상 우리의 소원이었던 통일은 문턱에서 무산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은 본국으로 돌아와 국민들로부터 최고의 전쟁영웅으로 환대를 받았고 미 육군사관학교 웨스트포이트에서의 연설에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 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그러 나 우리의 입장으로 보아서는 투르만 대통령의 결정이 통일의 기회를 막았다고 보겠지만, 만주 폭격으로 인한 세계 3차 대전의 발발을 예방했다는 평가도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 국민 누구도 다시금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다만 북한이 호전적이고 적화통일의 남침 야욕을 버리지 않는 한 국민이 하나 된 마음으로 이를 저지해야할 힘을 갖춰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심화되어 가고 있는 남 남갈등이다. 이젠 식견이나 체면을 가리지 않는 막말, 시위현장에 죽창과 쇠파이프 각목을 들고 나타나는 복면의 시위대들, 장외 투쟁에 나선 국회의원들 하나 같이 선량한 국민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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