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묵상하는 것은 비관적인 정서를 자극하지만, 신자들에게는 큰 영적인 유익이 있다. 성경은 잔칫집보다는 초상집에 가라고 한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전 7:2). 

초상집은 인생의 끝을 생각해보게 한다.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되니,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두어야 한다. 아무리 천하를 호령하며 살았던 사람도 죽음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하다. 죽음의 엄숙함은 인생을 진지하게 관조하게 만든다.

전도서 7:4에도 이렇게 말씀한다.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한 자의 마음은 혼인집에 있느니라”(전 7:4). 지혜자의 마음이 초상집에 있다는 것은 죽음이 그만큼 인생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할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마치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사는 것은 지혜가 아니다.  

그렇다고 늘 죽음을 생각하며 우울하게 살라는 소리도 아니다. 이 세상의 온갖 고통을 벗어나고자 삶을 부정하고 죽음을 찬미하는 염세주의(厭世主義)도 아니다. 오히려 인생의 끝이 있음을 생각하기에 오늘이라는 현재가 더 소중함을 역설하는 것이다.

오늘을 더 의미 있게 하고, 진정 사는 것 같이 살라는 것이다. 

꼬챙이의 곶감을 하나씩 빼먹듯 우리는 각자 주어진 인생의 날 수를 하나씩 차감하며 산다. 짧은 인생 살다 창조주 하나님이 오라 하시면 갈 수 밖에 없는 인생이다. 그 동안에는 하루하루를 소중히 생각하며 보람 있게 살아가야 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더 의미 있고 중요해진다. 

2019년 인기리에 방영된 ‘눈이 부시게’라는 드라마가 있다. 김혜자씨가 주연으로 연기를 했는데, 그해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대상을 받았다. 그는 수상 소감으로 드라마 마지막 회에 나왔던 내레이션을 읽어주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 내용은 이것이다. “내 삶은 때론 불행했고, 때론 행복했습니다. 삶이 한낱 꿈에 불과하다지만, 그럼에도 살아서 좋았습니다. 새벽에 쨍한 차가운 공기, 꽃이 피기 전 부는 달큼한 바람, 해질 무렴 우러나는 노을의 냄새... 어느 하루 눈부시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지금 삶이 힘든 당신,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당신은 이 모든 걸 매일 누릴 자격이 있습니다.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인생은 살 가치가 있습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6월의 날씨는 마치 잠자는 우리의 세포를 깨우려는 듯 그렇게 다가왔다. 6월 초입의 날씨가 눈에 부시다. 초여름에 접어들어서 한낮에는 덥지만 아침저녁에 살랑대는 선선한 바람이 우리 피부를 간지럽힌다. 산과 들녘의 나무들은 짙푸른 색으로 옷을 갈아입었고 그 생명력을 자랑한다. 

아침의 햇빛은 오늘 하루도 보람 있게 살라고 밝고 명랑한 빛을 띠며 우리에게 온다. 정오의 쨍한 햇빛은 선명하고 강렬함을, 그래서 치열하게 사는 우리의 모습을 투영해 준다. 이른 저녁 무렵 서서히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은은히 비치는 햇빛은 오늘 하루도 수고 했고 마무리 잘 하라고 우리를 어루만진다.

자연은 그런 햇빛을 받아 조용히 힘을 키워 발산한다. 마치 호르몬이 왕성한 사춘기 청소년의 그것처럼 말이다. 

생명으로 가득 찬 초여름의 날들은 어느새 지나간다. 그리 오래지 않아 여름의 열기에 지친 나뭇잎에 단풍들 날이 온다. 낙엽은 질 것이고, 한겨울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기에 지금 초여름 날들에 자연의 뽐냄이 마치 이제 신혼생활을 시작한 젊은 청춘과 같이 빛이 나는 것이리라. 우리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은가?

대단하지 않은 하루가 지나고, 또 별거 아닌 하루가 온다 해도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인 오늘은 너무도 소중하다. 드라마에서 한 김혜자씨의 대사를 다시한번 곱씹어 본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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