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은 사기에서 72개의 열전을 지었는데 그중에서 지금의 시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공자는 백이와 숙제에 대해 인(仁)을 행한 의인으로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 높은 인품의 상징으로 치켜 세운다. 그러나 사마천은 공자의 이러한 시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평가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사마천의 시기에도 그리고 지금의 시기에도 납득이 어려운 것일까? 이 두 형제는 옛날 고죽국이란 나라의 왕자들이었다. 그들의 아버지는 셋째 아들인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숙제는 아버지가 죽자 자신이 아닌 장남이었던 백이에게 왕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 숙제에게 있으므로 받을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공자는 동생은 장유유서를 지켰고 형은 아버지의 뜻을 유지하려는 효심이 지극하다고 칭찬했다. 

시간이 지나 이 두 형제는 같이 살다가 주나라의 서백이 노인들에게 잘 대접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었고 무왕이 왕위에 올라있었다. 무왕은 서백을 문왕으로 칭하고 그 위패를 들고 은나라를 공략하기 위해 동쪽으로의 정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두 형제는 무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선왕의 장례도 끝나기 전에 군대를 일으킨 것은 불효라고 꾸짖었다. 또한 신하의 나라가 군주의 국가를 공격하는 것은 불의(不義)하고 인(仁)을 저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격분한 무왕은 당장 이들의 목을 치라고 명령했다. 

그때 태공망이 나서서 이들은 의로운 사람들이니 해쳐서는 안된다고 만류했다. 결국 무왕은 군사를 계속 진격하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모든 사람들은 못된 왕을 폐하고 새로운 왕조가 등장한 것에 대해 환영하였고 이를 따랐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을 불충이라고 비난하고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맹세하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살았다. 그러나 먹을 것이 없어 오직 고사리만 먹고 목숨을 부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굶어죽게 되었다. 형제는 죽어가면서도 폭력으로 폭력을 대하는 것을 무왕은 모르며, 이제 우리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라는 시를 남겼다. 

사마천은 도대체 이 형제들의 행동이 의로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공자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안회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안회는 매우 가난했고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는 형편으로 젊은 시절에 요절하고 말았다. 사마천은 착한 사람에게는 복이 오고 나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야 마땅한데 이들의 죽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공자는 안회 보다 30세나 많았지만 그를 유별나게 아꼈다. 공자는 안회를 훌륭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밥 한그릇에 국 한그릇을 간신히 먹으면서도 불평 불만이 없고 오히려 도를 닦는 즐거움에 빠져있었다. 안회가 29살에 요절하자 공자는 소리내어 울면서 안회의 이름을 불렀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의 이야기와 가장 대척점에 있는 이야기는 도척(盜跖)과 관한 것이다. 도척은 춘추시기 말엽의 유명한 도적으로 죄없는 양민들을 죽이고 그 재산을 약탈하기도 했다. 그가 얼마나 나쁜가에 대한 표현은 매일 같이 선량한 사람들을 죽여 그 간을 내어 먹었다고 했다. 그는 수천명의 사병들을 거느리고 악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도척은 천수를 다하고 죽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덕을 쌓은 사람은 굶어 죽고 악행을 자행한 사람은 편하게 사는 것을 보고 도대체 무엇이 정당하고 잘 사는 가에 대해 정답을 찾기가 어려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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