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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중국인의 지혜 511사마천의 사기를 말하다(27) 조나라의 무령왕의 개혁정치
박기철 평택대학교 중국학과  |  pa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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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11.09  12: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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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시기 중엽 소진과 장의의 합종연횡책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후 안정이 깨어지고 다시 혼돈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진나라는 여전히 강대국의 자리를 지키고 다른 6개국을 넘보고 있었다. 그중 조나라는 새로운 왕을 맞이하여 일대 쇄신을 준비하고 있었다. 

조나라의 무령왕은 6번째 군주였고 기원전 325년에서 299년까지 살았으며 왕으로 재직한 것이 약 27년간이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으나 중국의 역사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조나라 무령왕은 겨우 15세가 되던 해에 왕위에 올랐다. 그의 아버지 조숙후는 위나라와 초나라, 진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의 국가와 힘든 전쟁을 계속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어린 무령왕이 왕에 오르자 위나라는 초나라와 진나라, 연나라, 제나라 등 4개의 나라가 군대를 보내 조나라를 위협하였다. 어린 무령왕을 몰아내고 조나라를 멸망시켜 그 땅을 나눠가지려는 속셈이었다. 

그러나 무령왕은 자신의 아버지의 충신이었던 비의의 도움을 받아 강력한 외교정책으로 이들과 맞서기 시작했다.

그는 조나라 전체에 계엄을 실시하고 전쟁을 준비하였다. 동시에 이들의 상호간의 모순을 찾아내어 이간계를 사용하여 조나라를 넘보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왕위에 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을 잘 이겨낸 무령왕에게 주변의 국가들은 태도를 바꿔 무령왕의 즉위를 축하해주었다. 실제로 그가 왕이 되었을 때 조나라의 상황은 극히 좋지 못했고 오랜 전쟁으로 국력이 쇠하고 있었다.

북쪽과 서북쪽에서는 소수민족인 유목민들이 끊임없이 국경을 침입하여 약탈을 일삼고 있었고 또 서쪽에는 강력한 진나라가 버티고 있었고 주변의 5개국도 조나라를 둘러싸고 있었다. 가운데 위치한 조나라는 매년 작은 전쟁을 치러야 했고, 2년이나 3년에 한번씩 큰 전쟁을 겪었다. 

무령왕은 이러한 외부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만약 일반인이라면 포기할 것을 그는 뛰어난 사고력과 행동력으로 조나라를 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었다. 무령왕은 첫째 군사력이 기본이 되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호복을 입고 말을 타고 활을 쏜다”라는 전술을 도입하고자 했다. 

당시 호복은 오랑캐의 복장을 의미하는데 옷이 간단하여 활동이 편리했다. 또한 유목민들은 말위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기동력이 뛰어났고 말을 타고 활을 쏠 수 있었다. 비록 조나라가 중원 지역에 있어서 농경문화에 익숙했으나 군사전략은 유목민의 기마전술을 흡수하여 강력한 군대로 재편하려고 하였다. 

그가 왕이 된지 19년이 되었을 때 자신이 먼저 유목민의 옷을 입고 북쪽의 유목민들을 편입시키고 개혁정책을 실시했다. 그는 직접 군대를 통솔하여 기마병을 육성하는데 노력을 하였고 모의전쟁을 하였다. 일반 군인들과 함께 훈련하고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하면서 군대의 사기를 높였고 정예부대로 육성할 수 있었다. 

무령왕의 새로운 군대제도 편성에 대해 자신의 숙부를 비롯한 많은 신하들이 반대하였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고 그대로 실천했다. 그의 이러한 과감한 결심과 실행은 조나라의 국력을 크게 성장시켰으며 군사력도 진나라 다음으로 강한 국가가 되었다. 

중국에서는 무령왕을 유목민 복장을 하고 말에서 활을 쏘는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당시 중국에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고 중국 역사계에서는 조나라 무령왕을 진시황, 한나라의 무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지도자로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뛰어난 왕도 자식의 문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였다. 그는 자신의 장남인 조장을 왕으로 삼지 않고 이복 동생을 왕으로 삼았는데 아들인 조장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반란에서 패한 아들을 어쩌지 못하고 자신이 거두었는데 반란을 토벌하던 무령왕의 숙부는 조장을 죽이고 무령왕도 굶어 죽도록 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왕도 자식의 문제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을 보면 우리가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는 말이 예전이나 지금이나 다 똑같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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