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큰 희생자가 발생한 이태원 압사사고는 국민들에게 슬픔을 안겨주었다.

한창 꿈을 펼칠 나이인 젊은이들이 하루아침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유가족들의 애통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소중한 가족이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같은 시간을 살아왔던, 어찌 보면 건너 건너 알지도 모를 이들의 죽음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사고 관련 속보 뉴스나 동영상을 굳이 찾아보려하지 않았다.

라디오나 텔레비전 뉴스를 간간히 듣는 것으로도 사건의 개요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언젠가 재해 관련 실시간 뉴스 속보와 영상을 며칠 동안 반복해 찾아보면서, 스스로는 그들의 불행에 공감하기 위한 것이라 하였지만, 어느 순간 그저 우울감만 더해질 뿐 자기 감상에 젖어있던 것은 아닐까 반성해 본 적이 있었다. 

남의 불행을 내 ‘감성팔이’에 소비하지 않고, 진정 그들의 슬픔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함께 애통한 마음을 가지려는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태원 압사사고 현장에서 여기 저기 사람이 죽어 나가고, 한 사람이라도 살려보려고 흉부압박에 여념이 없는데, 그 옆에서 아직도 흥에 겨워 소위 ‘떼창’을 했다는 뉴스에는 인간 본성에 대해 비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런 불행한 사건에 대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매체들을 탐독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장안의 화재거리라도 말하는 것처럼 신나게 떠들어대는 군상도 있다.

겉으로는 참으로 안됐다면서, 성경에 보면 몇몇 사람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얼마 전 일어난 비극적인 일을 당한 사람들 이야기를 전한 일화가 나온다(눅 13:1-5).

비극적인 일을 당한 사람들은 무슨 특별한 죄가 있어서 하필 그런 일을 당한 것이냐는 의문을 가지고 온 것이다. 

그때 예수님의 대답은 불행을 만난 그들이 다른 사람보다 더 죄가 많아 당한 것이라 생각하느냐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경고하셨다(눅 13:3).

덧붙여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있다.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 13:4-5).

누구에게라도 그런 불행은 닥쳐올 수 있다.

성경적 시각에서 본다면 이 땅에 존재하는 인간은 다 죄인이니, 하나님이 죄를 심판하기로 작정 하신다면 남아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어찌 보면 지금 내가 이 땅에 살아있음도 당연한 것은 아닌 셈이다.

남의 불행에 대해 쉽게 단죄하기 전에 먼저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대한 애통함이 필요하다.

정부 당국을 포함한 어른들의 무사안일과 안전불감증이 우리 다음세대들에게 큰 불행을 안겨준 것은 아닌지도 돌아보게 된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여기서 말하는 애통은 자신과 타인의 죄에 대해 깊이 슬퍼하고 아파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애통함이 있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한다. 

아무튼 슬픔을 당한 모든 유가족이 빨리 슬픔을 딛고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정부 당국자들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친다는 비난도 있겠지만, 다음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외양간을 고쳐야만 한다.

다음세대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기를 기도한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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