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운산 가는 아침 길이다.  어느 한의원 앞 정거장에서 문자를 보며 기다리다가 버스에 올랐다.

버스 문 입구에서 카드로 요금을 찍으려는데 카드지갑이 사라지고 없는게 아닌가, 당황스러워 가방 속을 이리저리 뒤적이는데도, 얼마나 허둥거렸으면 이런 내 모습이 참 불쌍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버스 기사님께 카드를 잃어버려 요금을 어찌하오라고 양해를 구하고 두 정거장을 지나서 내렸다.

집을 나올 때 지갑을 챙겼기에 분명 어디서 흘렸으리라 생각하고 조금 전 머물었던 정거장까지 되걸었다. 

그 카드지갑 퀼트로 만든 작은 물건이 눈에 선해 찾지 못하면 어쩌나 싶어 안달하며 걸었다.

저만치 그 정거장 긴 나무의자 끝에 카드지갑이 얌전히 놓여있었다.

뛸 듯이 기쁜 순간이었다.

애장품을 잃었다가 되찾은 반가움을 오래 간직하며, 다시 버스를 타고 안성시장에서 내렸다.

안성은 마침 장날이다.

시골 할머니들이 내 온 텃밭의 열매들은 그 주인의 결과물로 언제나 단단하고 다정하다.

서운산 가는 버스시간까지 여유를 부리며 장터 구경을 한다.

크렌베리 한되, 생율밤, 붉은대추도 샀다. 가을 열매들의 풍성함을 피부로 느끼며 좋아했다. 

청룡저수지에서 내려 호수를 따라 걸었다.

평일이라 한적하다,

단풍든 벚나무 가로수길을 혼자 걷노라니 유유자적이란 문자가 그대로 떠오른다.

일주일간 일과 시간에 밀려 돌볼 수 없던 심신을 오늘 하루동안 여기에 떨어뜨려 놓는다.  

마을 안 긴 담벼락에 선명히 핀 유홍초를 보고 여문 꽃씨를 받았다.

이 꽃씨를 마당 있는 친구에게 전해주면, 그 씨앗을 심어 다음해 가을에는 유홍초를 집 앞에서 보겠지.

저녁 어스름, 돌아온 집 앞에는 은행나무 세 그루가 있는데 무수히 노란 은행잎이 하루하루 바람에 흔들린다. 

올해 들어서 이름 있는 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이어령 김동길 송해...    

내가 사는 집 오층에서도 낙엽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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