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燕)나라 왕을 설득하여 합종책을 승낙받은 소진은 이제 진나라를 포위하려는 전략을 준비하였다. 전국시대에 있었던 합종과 연횡은 동서양의 역사에서 유사한 사례들을 많이 살펴볼 수 있다. 1차 세계대전때 강력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동맹에 대항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러시아가 연합하였고 이후 미국을 끌어들여 전쟁에 승리를 거두었다. 2차 세계대전 역시 독일과 이탈리아, 일본이 동맹을 맺고 전쟁을 일으키자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가 다시 동맹을 맺어 전쟁을 종식시켰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사회주의 진영이 대립하여 냉전을 초래했고 그 기간은 1991년 7월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나토와 미국이 연합하여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동맹은 서로가 권력의 균형을 잡아 전쟁을 피하는 것이 주된 목적으로 일종의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라고도 부른다. 바로 소진과 장의가 활약했던 그 시기 가장 강력한 국가는 진나라였고 이보다 힘이 약한 6개의 나라는 서로 동맹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하였으니 바로 ‘합종책’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소진이 있었다. 

소진은 연나라를 떠나 조나라를 방문하였고 그 다음에는 한(韓)나라를 방문하였다. 한나라의 왕을 만난 소진은 우선 한나라의 군대를 한껏 칭찬하였다. 그러나 한나라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나라의 눈치를 본다면 앞으로 진나라는 더 많은 것을 요구할 것이고 궁극에는 나라를 잃을 것이라고 자극하였다. 

소진의 설득에 넘어간 한나라 왕은 분노하면서 소진이 말한 합종책에 가담할 것을 약속하였다. 한나라를 설득하는 것에 성공한 소진은 이제 위(魏), 제(齊), 초(楚)나라를 이어서 방문하여 동맹의 필요성을 설파하고 6개 나라의 동맹을 맺었다. 

비록 어떤 나라에서는 신하들이 진나라와 동맹을 하는 것이 자신들이 사는 것이라고 왕에게 주청하였다. 소진은 그런 사람은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라는 프레임을 씌워 그 의견들을 비판했고 소진은 6개 나라의 재상이 되어 합종전략을 개시하였다. 

소진이 합종책을 성공시키고 진나라에 대한 위협을 함께 막아내는 동안에는 평화가 유지되었다. 즉 세력균형이 잘 만들어졌다는 의미로 마치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이 힘의 균형을 서로 맞추고 있을 때는 큰 충돌이 없었던 것과 유사하다. 

소진이 6개 나라의 재상을 맡게 되자 이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대신들이 생겨났다. 이 무리들은 소진이 세치 혀로 나라를 팔아먹는 사기꾼이라고 험담하여 자신들의 왕들에게 소진을 믿을 수 없는 인물이라고 헐뜯었다. 얼마 후 소진을 싫어하던 누군가가 자객을 보내 소진에게 위해를 가했고 그는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는 죽기 전에 제나라 왕에게 자신이 죽으면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반란을 선동했다는 죄목으로 사지를 찢는 거열형에 처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자신을 죽인 범인이 나올 것이고 그때 자신의 복수를 해달라고 부탁했다.

소진을 거열형에 처한 후에 실제로 범인이 나타났고 제나라 왕은 범인을 처형했다. 소진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지략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세치의 혀로 세상을 흔들었던 소진에 대한 평가는 그렇게 좋지 못했다. 왜냐하면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각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치공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이익이 사라지면 동맹은 쉽게 무너지게 되어있었다. 

미국과 중국이 냉전기간 동안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전략적 협력을 맺었고 당시 미국은 타이완을 유엔에서 몰아내고 그 자리에 중국을 앉혔다. 그러나 중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다시 미국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자 지금은 중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또 다른 동맹을 결성하여 중국을 포위하고 있다. 

  결국 이해관계로 얽힌 협력이나 동맹은 언제든지 쉽게 깨질 수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소진이 죽은 후 6개 나라들은 조금씩 동맹이 약화되었고 합종책은 와해되었으며 각자 도생의 길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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